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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자율학습 부활 말죽거리 잔혹사 시대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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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 K고는 최근 직원 전체회의를 열고 "3월부터 보충수업을 한다"고 교사들에게 통지했다. "몸이 불편하신 분은 빼고 모두 참여해 달라"는 교장의 간곡한 호소도 있었다.

서울 S고는 이미 방과 후 국어.영어.수학.사회탐구.과학탐구 교과를 수준별로 가르치기로 하고 희망 학생을 조사하고 있다. 수준별 교실을 준비하고 있는 D고도 참여 교사가 부족할 경우 인근 학교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서울시교육청이 25일 보충수업.자율학습을 허용하는 대책을 발표하기 이전부터 상당수 학교가 이에 대비하고 있다.

고교가 보충수업 전성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다간 학생들을 입시지옥으로 몰아넣었던 1970, 80년대식 보충수업이 부활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는 300만명의 관객을 끈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70년대식 강제적 보충수업, 우열반이 부활할지 모른다는 의견으로 도배질 된 상태다.

한 고3 학생은 "희망 학생들로만 한다는 보충수업이지만 학교에서 강제로 시킬 것이 뻔하다"며 "보충수업이 금지됐을 때도 0교시와 8교시를 특기적성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보충수업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부모들도 "지금도 새벽에 나가 밤 늦게 들어와 아이 얼굴 볼 시간조차 없는데 오후 10시까지 학교에 잡아놓고, 다시 학원가로 뺑뺑이를 돌리는 일을 계속해야 하느냐"는 목소리도 쏟아냈다.

보충수업.자율학습은 이런 문제점 때문에 7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두차례에 걸쳐 철퇴를 맞았다. 80년 과외 금지와 보충수업을 폐지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와 99년 이해찬 장관 때다. 하지만 그때마다 학습부진아 구제, 희망자만 실시 등의 명분으로 보충수업.자율학습은 부활했다. 이번엔 사교육비 경감 차원에서 나왔다.

문제는 보충학습을 수준별로 한다는 계획만 발표됐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준을 가를지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성적대로 가르는 우열반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교과 진도를 나가거나 문제풀이를 할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도 없다. 교육부는 장학지도를 하겠다지만 그 외에 다른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전교조 송원재 대변인은 "야간학습이 학생들의 심성을 피폐하게 한다고 금지한 게 얼마 됐다고 과거 정책을 되풀이하느냐"고 말했다.

강홍준.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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