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 내부거래조사의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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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종현(崔鍾賢)전경련 회장 발언 파문이 확산되자 재계는 바짝움츠린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전경련은 20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릴 예정이던 전경련 출입기자단과의 오찬간담회마저 18일 갑자기 취소했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지금은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취소이유를 밝혔다.
재계 관계자들 중에는 그러나 익명을 전제로『재계대표의 발언내용을 문제삼아 정부가 선경그룹은 물론 재계 전체를 상대로 내부자거래 조사의 강도를 높인다면 기업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재계인사는『업종전문화나 소유.분산등에 대한 崔회장의 발언은 재계가 오래전부터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그동안 수차례 건의했던 일』이라며『현재의 경기를 보는 시각에도 정부와 재계에 큰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의사표시에 대해 정부가 너무 강공으로 맞서는 것아니냐는 시각이다.
또다른 관계자는『새 정부들어 대기업 그룹회장이나 최고경영자들이 고위정치권 인사들과 만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며『전경련회장의 목소리가 좀 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여기에도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법이 대기업그룹을 다루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이용되고 있는데 대해 걱정하는 재계인사들도 있다.
공정거래법은 기업간 경쟁촉진을 조장하는 쪽으로 운영되어야 하는데「재벌길들이기」의 수단으로 사용될 경우 기업간 경쟁을 오히려 위축시킬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재계의 관심사는 무엇보다 그 불똥이 어디까지 튈 것인가다.
모 그룹의 고위인사는『정부가 보복성 조사가 아니라는 명분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선경에만 조사를 국한하지 않고 몇몇 그룹을 포함시키거나 아예 30대그룹을 싸잡아 조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또 정부의 이번 조사가 단지 崔회장의 발언 내용만을 이유로 삼은 것이 아닐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지난해 7월 공정거래법 개정에 대한 재계의 반발,일부 재계인사의 꺼지지 않는 정치참여설등 몇몇 사안을 보면서 쌓인 정부관계자들의 감정이 폭발되었다는 풀이다.
대우그룹의 구조조정안을 내는 과정에서 일어난 정부와 재계의 불협화음도 한 원인이라는 해석도 재계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따라 일부 대기업그룹들은 구조조정을 당초 계획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검토중이다.
LG나 선경등은 그룹수를 줄이지 않는 선에서 구조조정안을 마련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다시 손을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선경그룹은 아직 崔회장의 복안이 전달되지않은 상태로 실무선에서 구조조정작업을 펴고 있다.
인위적인 구조개편을 崔회장이 탐탁지않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선경그룹 관계자는『사정이 이쯤 되고 보니 그룹수를 줄이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쪽으로 구조조정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선경그룹은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일체 함구한채 정부의 진의.배경.강도파악을 위해 모든 정보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鄭在領.趙鏞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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