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정인영 회장의 ‘둥지’ 만도를 되찾다 … 한라건설이 한을 풀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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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 정인영 회장(뒤)의 한을 푼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

“외국기업에 넘어간 만도를 어떻게든 되찾아와라.”
 
고 정인영(2006년 7월 별세) 한라건설 명예회장은 생전에 이렇게 당부하곤 했다. 9년간의 와신상담(臥薪嘗膽)끝에 아들은 마침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게 됐다. 정몽원(53) 한라건설 회장이 21일 홍콩에서 만도를 되찾아오는 계약을 했다. 만도의 최대주주인 선세이지에 6515억원(6억8700만 달러)을 주고 그들이 갖고 있던 지분 전량(72.4%)을 한라가 주축이 된 컨소시엄이 매입하기로 한 것이다. 컨소시엄에는 KCC·산업은행·국민연금관리공단·사모펀드가 참여하고 있다. 9년 전 팔았던 가격이 약 6000억원(당시 환율로 4억4600만 달러)이기 때문에 아주 좋은 가격에 되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라그룹의 모기업이었던 만도는 국내 2위의 자동차부품업체다. 정인영 회장은 외환위기 이후 그룹이 총체적 경영난에 빠지자 눈물을 머금고 1999년 알토란 같았던 만도를 JP모건과 UBS캐피털이 합작한 투자회사 선세이지에 팔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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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영 회장은 62년 현대양행을 창업해 한국 중공업 역사에 획을 긋는 회사로 키웠다. 80년 억울하게 신군부에 현대양행(현재의 두산중공업)을 빼앗겼지만 현대양행의 한 부문이었던 만도는 살려 훗날 한라그룹의 주축으로 삼았다. 한라그룹은 96년 자산 6조2000억원, 매출 5조3000억원에 계열사 21개로 재계 12위에 올랐다. 그러나 97년 말 외환위기의 칼바람이 불어닥치자 한라중공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와 자금난, 계열사 간 상호출자가 얽히면서 순식간에 무너졌다. 만도만은 내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으나 어쩔 수 없었다. 정몽원 회장은 이 과정에서 계열사 불법자금 지원으로 징역 4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지난해 말 사면)받기도 했다.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친 한라건설이 2003년 이후 건설경기 호황으로 살아나자 정 회장 부자는 만도를 되찾겠다는 집념을 불태웠다. 마침 2005년 선세이지가 만도를 팔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몽원 회장은 치밀하게 준비했다. 여러 업체가 만도에 눈독을 들였지만 관건은 친척 기업인 현대·기아차그룹이었다. 현대·기아차는 만도를 인수할 경우 자동차 수직계열화를 완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보였다. 물론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인수 의지를 직접 밝힌 적은 없다. 하지만 세간에는 만도 인수를 놓고 한라와 현대차가 경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았다. 정몽원 회장으로선 신경이 곤두서는 부분이었다.

그러던 것이 정인영 회장 별세 이후 현대·기아차, 현대중공업, KCC 등 ‘범 현대가’가 한라를 밀어주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가의 맏형이 된 정상영(72) KCC 명예회장의 역할이 컸다.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정인영 회장의 막내동생인 그는 지난해 7월 정인영 회장의 1주기에서 일가족에게 “빼앗긴 회사를 반드시 찾아 형님(정인영)의 한을 풀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 그리고 정몽구 회장을 수차례 설득해 묵시적인 동의를 얻어냈다. 현대건설을 노리는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도 ‘범 현대가의 실지(失地) 회복’이란 취지에 동의했다. 정상영 회장은 한라를 돕기 위해 KCC를 적극적으로 컨소시엄에 포함시켰다.

정몽구 회장의 지지는 정몽원 회장에게 천군만마였다. 만도의 납품에서 70%를 차지하는 현대·기아차의 의중이 인수의 향배를 좌우했기 때문이다. 1조2000억원이라는 훨씬 높은 가격을 써낸 KKR이 현대·기아차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동의를 얻지 못한 것이 그 증거다. 정몽원 회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만도를 인수할 의지를 갖고 있다”고 결의를 다졌다. 노조도 그의 편을 들었고 정몽구 회장까지 밀어주니 선세이지는 낮은 값을 써낸 한라를 낙점할 수밖에 없었다.

이재훈·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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