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등급제 보완은 환영…난이도 문제 고민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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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성(20·D대 치대 1·가명) 군은 2008 수능에서 전영역을 통틀어 수리 1문제를 틀렸다. 서울대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를 했지만 4점짜리 수리 1문제가 이군의 발목을 잡았다. 수능 원점수 496점(가채점 결과). 당연히 합격해야 할 점수지만 수능등급제(수리 2등급) 때문에 서울대 의대 정시 1단계도 통과하지 못했다. 이군은 결국 삼수를 결심했다.

수능 원점수 446점인 고희선(19·경기도 분당·가명) 양도 등급컷에 걸려 언어와 외국어영역 2등급을 맞았다. 정시에서 고려대 컴퓨터공학과에 지원했지만 합격을 장담할 수 없다. "등급제 수능 때문에 원점수가 높아도 원하는 학과에는 지원조차 하지 못했다"며 울먹이는 고양은 요즘 재수학원을 알아보고 있다.
이들이 재수·삼수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수능등급제가 점수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최근 신년기자회견에서 '대학입시 자율화'를 근간으로 한 교육정책을 발표했다. 수능등급제 폐지·표준점수제 부활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당선인은 "수능등급제 때문에 수능변별력이 없어지니 대학이 논술을 하려 하는 것 아니냐"며 "대학에 변별력만 주면 등급제도 취소하고, 논술고사도 어렵게 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본고사 부활은 없다"며 "수능과목을 4개 정도로 축소하면 수험생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사교육비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당선인의 회견내용을 두고 학생·학부모들은 일단 반기는 기색이다. 그러나 본고사 부활 금지나 수능과목 축소안 등에 대해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학생선발에 관한 '자율성'을 갖게 될 대학이 어떤 선발방식을 취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학생·학부모 "수능점수 공개가 가장 시급한 문제"

한 온라인 교육사이트에서 대통령 선거기간동안 수험생 13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라는 교육정책이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에서 627명(48%)이 "수능등급제 폐지"라고 답했다.
수능등급제 폐지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뜨겁다는 얘기다. 학생부 반영비율 확대(15%), 고교평준화 폐지(14%), 본고사 부활(13%), 특목고·자사고 설립확대(10%)가 뒤를 이었다.
설문대상자 중 절반 가까이가 '수능등급제 폐지'를 답한 것을 보더라도 수능등급제에 대한 고교생들의 불만과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실감케 했다.
김동혜(19·풍생고 졸) 군은 "수능등급제 하에서는 10점 차이가 나는 데도 같은 등급이 될 수 있고, 1점차로도 등급이 낮아질 수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당선인이 수능등급제 폐지가능성을 언급함에 따라 재수생이 대폭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전년도 12만8000 여명이던 졸업생 수능응시자가 2009학년도 입시에서는 15만명 이상이 될 것으로 점쳐지면서 졸업생 응시자 비율은 사상 최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군은 "수능에서 1문제 차이로 3개 영역에서 등급이 떨어졌다"며 "수능등급제 폐지가 공식발표되면 다시한번 도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최미숙 상임대표는 "2004년 수능등급제 실시계획이 발표된 뒤 변별력과 공정성 문제 등을 이유로 헌법소원을 냈지만, 법원에서는 '피해 본 학생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기각했다"며 "등급제 부작용은 예견된 결과이니 만큼 최대한 빨리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대학입시 정책변화가 고1·2 학생들에게 혼란을 초래하고, 자율화정책이 새로운 사교육 붐을 불게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참교육학부모회 윤숙자 회장은 "매년 바뀌는 교육정책 때문에 학생·학부모들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며 "수능점수제로 돌아갈 경우 난이도가 올라갈테고, 어려운 수능에 대비하기 위해 학생들은 또다시 학원으로 몰리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당수 대학이 수능등급제가 폐지되면 논술고사를 보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데, 점수제일 때는 왜 논술을 치렀는지를 먼저 설명해야 한다"며 "정부와 대학이 확실한 정책을 세워 입시변화에 요동치는 학생들이 더이상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리미엄 최석호 기자 bully21@joongang.co.kr

'3단계 대입자율화' 어떻게
1단계: 학생부 및 수능 반영 자율화
대학이 학과의 특성에 따라 지원자의 학생부와 수능 반영을 자유롭게 하고, 정부는 대학의 입학사정관제도, 대학교육협의회의 고급심화과목제도(AP) 등에 대하여 지원

2단계: 수능과목 축소
수능과목을 보통과정, 탐구과정 중에서 각 2~3개씩 4~6개 과목을 선택해서 응시. 지원학생의 다른 과목 성취수준이 필요한 경우, 대학이 개별학생의 교과별 내신을 참조하도록 함

3단계: 완전 자율화
대학이 본고사 없이도 자체 학생선발능력과 제도적 기반을 구축했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대학입시를 완전히 대학에 맡기는 완전 자율화 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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