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대학교>10.대학원생 고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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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석사과정 박기출(朴起出.26)씨는 매주 나흘동안 하루 세시간씩 대학입시 단과학원에서 저녁시간에 수학을 강의한다.
대학원 수업과 논문준비만으로도 눈코뜰새 없이 바쁘지만 그나마학원 출강을 통해 한달에 90만원씩 받는 수입이 없으면 도저히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결혼,부모의 도움으로 마련한 전셋집에 사는 朴씨 부부의 생활비는 아끼고 아껴 쓰더라도 한달 50만원 정도.
여기에 학기당 등록금 90만원을 내고 해마다 오르는 전세금을 충당하기 위해 매달 30만원을 저축하고 나면 책값 은 생각할 수도 없는 빠듯한 살림이다.
서울대 대학원생들의 절반 이상은 朴씨처럼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한 과외 일자리를 한두군데씩 갖고 있다.
선진국의 대학원생들이 밤늦도록 연구실에 불을 켠채 연구하고 있을 때 우리 학생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부업전선에 나가는 것이다. 교수들은 공부에만 전념하지 않는 대학원생들이 못마땅하지만 어려운 사정을 빤히 아는 처지라 질책할 수도 없다.
서울대는 우수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외국의 명문대학에 비해 손색없는 연구결과를 내놓는 국제수준의 대학원(연구)중심대학으로발전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그러나 서울대 대학원의 연구여건은 국제수준과는 너무나 큰 격차를 보이고 있고 대학원생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연구에 전념하지 못한다.
서울대 대학원생들의 1인당 장학금 수혜액(94년기준)은 학기당 평균 20만8천원으로 학사과정의 19만5천원과 큰 차이가 없다. 학부생들에게는 비싼 등록금을 받지만 석.박사과정 학생에게는 등록금 면제는 물론 학비.생활비까지 보조해 주는 외국 대학과는 정반대의 현실이다.
기숙사등 주거문제에 대한 걱정없이 24시간 연구할 수 있는 환경도 연구중심대학에 필수적인 여건이지만 서울대의 대학원생 기숙사 수용률은 6.2%에 불과하다.
최근 학교측은 기혼 대학원생 전용 기숙사를 신축하고 우수학생을 선발,생활비를 지급키로 하는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혜택을 받는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추가재원 마련에도 어려움을 겪고있다. 인문대 김남두(金南斗.철학)교수는『정부관리를 만나 예산지원을 하소연하면「대학원생들은 공부가 좋아 자기 돈 들여 공부하려는 사람들인데 정부에서 지원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을 듣곤한다』며『대학원생들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경쟁력 강화의 밑거름이 되는 만큼 이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원생들이 연구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비단 생활보장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중문과 대학원생 김준연(金俊淵.26)씨.동아문화연구소에서 연구조교로 일하고 있는 그는 매일 수십통씩 쏟아지는 각종 우편물과 대학본부.학술단체등에서 밀려드는 공문에 따라 자료를 정리하고 회신을 하다보면 정작 연구조교로서의 고유업무나 자기 공부는엄두도 못낸다.
연구소가 주관하는 학술회의나 세미나가 있으면 1주일 내내 책한권 못보고 몸은 몸대로 녹초가 돼버린다.
경비신청.장소예약에서부터 초청장 발송.포스터 부착까지 준비업무를 모두 혼자 도맡아 하는데다 세미나 하루전날 발표원고가 넘어오면 밤을 새워 타자를 쳐서 요약집을 만들고 심지어는 세미나실의 청소와 참석자들의 커피까지 타줘야 한다.
그 러나 金씨가 받는 보수는 월 7만원에 수업료 면제가 고작이다. 열악한 형편을 딛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 학위를 받아도 자칫「고등실업자」신세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대학원생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에 연구의욕 또한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같은 사정이다 보니 대학원 진학 희망자가 급격히 줄어 인문.사회대의 경우 최근 4년째 입학정원마저 채우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공계라고 해서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니다.얼마전공대신문사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석사과정 45%,박사과정 42%가「마땅한 대안이 없어 대학원을 선택했다」고 응답했다.
『어려운 학문의 길을 선택해서 한눈 팔지 않고 달려왔지만 고시에 합격한 친구들을 보거나「장가갈 나이가 넘도록 전망도 없는일에 매달리느냐」는 말을 들을 때면 솔직히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오로지 학문적으로 대성하겠다는 오기 하나 로 버티고 있다.』 독문과 박사과정 정현규(鄭鉉奎.31)씨의 솔직한 고백은 서울대가 지향하는 진정한 「대학원 중심대학」의 길이 얼마나멀고 험난한 과제인지 말해주고 있다.
특별취재반 ◇도움말 주신분▲李相沃 서울대인문대학장▲金容九 서울대사회대학장▲李仁圭 서울대자연대학장▲金南斗 서울대인문대교수 ▲李鍾德 서울대공대교수 〈다음 회에는 「비효율적인 대학행정」을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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