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몸을 ‘부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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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겨울 산의 나목(裸木)은 눈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눈꽃을 피울 수만 있으면 차가운 몸이라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다. 눈은 따뜻한 사랑으로 자신을 가꿔줄 그에게 몸을 ‘부비며’ 그렇게 겨울을 보낸다.

“엄마는 사랑스러운 아기의 뺨에 얼굴을 부볐다” “놀이공원에 간다는 소리에 잠자던 아이는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와 같이 뺨이나 눈, 손 등 신체 부위를 맞대 문지르는 것을 표현할 때 ‘부비다’를 쓰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부비다’는 표준어가 아니다.

국어사전에서 ‘부비다’를 찾아보면 어느 지역의 사투리란 말도 없이 ‘비비다’의 잘못이라고만 돼 있다. 그러므로 ‘부볐다, 부비며’는 ‘비볐다, 비비며’로 고쳐 써야 옳다. 예전 일부 사전에서는 ‘부비다’를 방언으로 본 경우도 있다.

‘비비다’는 ‘두 물체를 맞대어 문지르다(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다), 어떤 재료에 다른 재료를 넣어 한데 버무리다(국수는 열무에 비벼야 제 맛이 난다), 어떤 물건이나 재료를 두 손바닥 사이에 놓고 움직여서 뭉치거나 꼬이는 상태가 되게 하다(짚으로 새끼를 비벼 꼬다)’의 뜻으로 널리 쓰인다. 이 밖에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거나 아부하는 행동을 하다, 많은 사람 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다, 좁은 틈을 헤집거나 비집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 내기 위해 억척스럽게 버티다’ 등 그 뜻이 다양하다. 유난히 눈을 보기 힘든 이번 겨울, 그래서 겨울 산은 눈이 그립다.  

한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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