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대신 마이크 잡은 ‘농구 얼짱’ 신혜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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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 22면

신혜인이 18일 용인에서 열린 삼성생명과 신세계의 여자프로농구 경기를 해설하고 있다. [용인=신동연 기자]

모처럼 내린 눈이 거리를 뒤덮은 11일. 강남 도곡동의 한 카페에서 신혜인(22)을 만나기로 했다. 카페에 도착해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던 그녀는 30분 정도 지난 뒤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집에서 좀 더 가까운 장소로 옮기자고. 옮긴 장소에서 10여 분을 기다렸다. 오후 1시15분이 되어서야 나타난 신혜인은 대뜸 물었다. “1시40분까지 끝낼 수 있나요?”

말투는 느릿느릿 … 경기 분석은 빠릿빠릿

그러고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요즘 하는 일도 없는데 관심을…(가져 주신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바쁘다. 학교 공부를 따라가기도 힘들고, 더구나 요즘은 여자농구 겨울리그를 중계하는 해설가가 아닌가. 경기가 없는 날엔 분당에 있는 한 스포츠 서비스 센터에서 현역 선수들의 재활운동을 돕는 인턴 일도 하고 있다.

“제가 운동만 해와서 못 해본 게 많거든요. 방학도 계속 바쁘게 보내고 싶어요.”

신혜인은 서울여대 체육학과 07학번이다. 여자프로농구 신세계에서 뛰다 건강이 나빠 2005년에 그만두고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공부에 매달려 지내던 그녀는 지난해 11월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의 인터넷 중계 해설자로 데뷔했다. 1월 5일에는 WKBL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올스타 경기에 등장하기도 했다.

신혜인은 요즘 WKBL 경기 해설에 푹 빠져 있다. “…선수들이 나오지 않았고요…”

“…감독님이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아요…” 등 신혜인 해설위원의 말투는 여대생과 다름없다. 책을 읽어 내려나가는 듯한 모노 톤. 그런데 이 말투가 ‘먹힌다’. 딱딱하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우연히 해설을 맡게 됐다. 친구인 삼성생명의 박연주를 응원하러 용인체육관에 들렀다가 WKBL 관계자들을 만나 권유를 받았다. 처음에는 물론 거절했지만 결국 설득에 ‘넘어갔다’.

“인터넷 중계니까 부담없이 해보라고 하셨어요. 처음에는 운 좋게 차양숙 위원님과 같이 진행을 하게 됐죠.”

신혜인은 첫 경기에서는 “세 마디 정도밖에 못했다”라며 부끄러워했다. 어눌하고 느
릿느릿한 자신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예전에 해설한 경기 동영상을 다시 보며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아무리 미숙하다고 해도 신혜인은 경기인 출신. 그녀의 눈매는 날카롭다. 경기 상황을 콕콕 집어내 설명하는 능력은 아주 뛰어나다. 은근히 자신감도 갖고 있다.

“요즘엔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요. 연맹에서 기회를 준다면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어요.”

코트가 아닌 사이드 라인에서 신혜인이 바라본 여자농구는 어떤 모습일까. 그녀는 “‘아기자기한 맛’이 여자농구의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이번 시즌에 외국인 선수가 출전하지 않아 여자농구가 재미없다는 팬들에 대해서는 “좀 더 너그럽게 봐달라”고 호소했다.

“기존 선수들이 외국인 선수에게 득점을 의존하는 전술에 익숙해져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외국인 선수가 빠지니 득점이 저조할 수밖에 없죠. 아직은 국내 선수들끼리 경기하는 데 대한 적응기간이라고 봐요.”

신혜인은 “그런 면에서 지난 10일 삼성생명의 변연하가 국내 선수 최다인 46득점을 기록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변연하의 46득점은 외국인 선수를 포함해 한 경기 개인 최다득점 4위에 해당한다. 이 경기를 해설한 신혜인은 “국내 선수들도 득점을 많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경기”라고 말했다.

명승부를 보면 신혜인의 가슴도 끓어오른다. 하지만 유니폼을 벗은 그녀는 다시 코트에 설 수 없는 입장이다. ‘현장’을 코앞에 두고 마이크를 잡는 신혜인은 “농구에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라고 했다. “동기들이 자신들이 속한 팀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만한 연차가 됐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신혜인은 부정맥이 심해 운동을 그만뒀다. 2005년 여름 수술을 했으나 완치되지는 않았다. 재활훈련을 하다 러닝머신에서 쓰러지고 다시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신혜인의 목이 메기도 했다.

“동아리 활동이나 취미로 운동을 하는 건 괜찮지만 직업으로 뛰는 것은 무리라고 하더군요. 어린 나이에 마음이 약해졌죠.”

그녀는 곧 공부를 시작했다. 신혜인은 해설보다 공부가 쉽다고 했다. 1학년 성적을 묻자 “전공과목 성적은 다 좋은데 교양과목 점수가 안 나왔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아직 부족해요. 그래도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으니까 좋아요.”

신혜인은 미국 유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 스포츠 마케팅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미국에서 본토 농구를 배우고 싶다는 말도 했다. 그녀의 꿈은 대학교수다. 그녀는 현재의 자기 모습에 “만족할 수는 없지만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름대로 이유도 설명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얼짱’ 덕을 많이 본 것 같기도 하고요. 다른 여자 농구선수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프로냐 대학이냐를 선택해야 하는데 저는 어린 나이에 둘 다 경험해 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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