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에선 민주성보다 효율성 더 중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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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 14면

박재완 TF팀장이 18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번 개편안은 일하는 ‘실용정부’에 맞게 설계됐다”고 거듭 강조했다. 최정동 기자

박재완 인수위 정부혁신·규제개혁 태스크포스(TF)팀장은 이명박 정부의 밑그림을 짜는 정부조직 개편을 주도했다. 1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인수위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번 정부 개편안에 대해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기준)에 맞춘다는 대전제 아래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과 같은 플레이어(Player)들이 소신껏 뛸 수 있도록 하는 데 역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열심히 챙기고 속도감 있게 업무를 추진하는 이명박 당선인의 리더십 특성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박재완 정부혁신 TF팀장 인터뷰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은 ‘대(大)부처주의’로 요약되는데.

“당선인은 탁상공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 가능한 정책을 펼 수 있도록 정부 개편안을 짜라고 주문했다. 지금처럼 부처가 배타적인 업무영역을 구축하고 있으면 기업이 이 부처, 저 부처를 찾아다녀야 한다. 또 큰 문제가 터졌을 때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A부처는 동쪽으로 가고, B부처는 서쪽으로 가면 파열음이 나게 마련이고, 정책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비용과 시간도 많이 든다. 대부처제로 가면 동쪽으로 갈지, 서쪽으로 갈지를 내부에서 조율한다. 규모가 크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일이 늘어난 쪽에 인력을 더 배치해 정책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일해야 한다.”

-청와대의 덩치가 줄었지만, 힘은 더 세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힘이 세졌다고 볼 수 없다.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이 솔선수범해 군살을 빼야 한다는 게 당선인의 생각이다. 그래서 경호실도 45년 만에 폐지했다. 해외 어느 곳에도 경호실이 독자적인 직제로 있는 나라는 없다. 청와대 인사수석이 공공부문 인사까지 챙기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청와대에 수석과 보좌관에다 12개 국정과제위원회가 있고, 어떤 위원장은 비서실장이 갖지 못하는 권한까지 행사한다. 이렇게 수직적 계층구조가 다원화돼 있으면 비용이 많이 든다.”

-현 정부가 민주적 합의를 중시했기 때문 아닌가.

“물론 민주적 합의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변화 속도가 빠른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다. 장관이 소신껏 일할 수 없다. 층층시하 위원회에서 견제하고, 인사 수석실에서 인사 간섭을 하다 보니 부처가 형해화(形骸化)됐다. 경제부총리가 추진한 부동산 정책이 위원회에서 뒤집히기도 했다.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계층구조를 간소화했다. 대통령·총리·장관 같은 플레이어의 목소리와 권한·책임을 크게 하자는 것이다. 부처가 22개에서 15개로 줄면 ‘n분의 1’ 관점에서도 파이가 커진다. 장관이 바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통령이 바로 장관에게 지시하는 시스템이다.” 당선인도 “기업들도 그렇게 하는 것 아니냐. 옥상옥(屋上屋)으로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 팀장에게 “견제와 균형도 중요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그는 “3권분립 체제에서 행정부 견제 역할은 국회가 한다. 행정부 내에서 의사결정 구조가 지나치게 나뉘어 있으면 급변하는 대내외 여건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행정부에서는 민주성보다 효율성이 강조돼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흐름 속에서 이번 정부 개편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선진국들이 모두 부처 간 벽을 허물고 정부의 크기를 줄이고 있다. 이번에 대표적으로 정보통신부·여성가족부·통일부·과학기술부·해양수산부 등 5개 부처가 다른 부처와 합쳐지게 됐다. 이들의 특징은 선진국에는 없는 부처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여서 해양수산부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4면이 바다인 영국과 일본에도 해양부는 없다. 여성가족부가 사라져 여성의 권익향상 기능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그런 논리라면 노인부도 있어야 하고, 장애인부도 있어야 한다. 그런 식이면 30개 부처를 만들어도 모자랄 것이다.”

박 팀장은 “부처의 규모·권한과 해당 분야의 발전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며 “정통부의 경우 인터넷TV(IPTV)가 생기는 데 걸림돌 역할을 했다는 혹평도 있다”고 제시했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공무원을 감축했지만 실제로는 민간 위탁 등을 통해 이른바 ‘그림자 정부’의 규모가 오히려 커졌다는 지적이 있다. 이번에 농촌진흥청을 출연연구기관으로 바꿔 3000명을 줄이는 것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겠는가.

“민간 부문으로 넘어가면 인센티브 구조가 작동하게 된다. 공무원 조직은 연공서열 순으로 가지만, 민간으로 가면 성과 중심으로 바뀐다. 진흥청 연구원들이 연구해야 할 시간에 정부 기념식에 참석해서야 되겠느냐.”

마지막으로 “효율성을 강조하는 ‘신공공관리론’과 같은 맥락이 아니냐”고 물었다. 박 팀장은 “그렇게 볼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한 노동·환경·보건복지는 전혀 축소하지 않았다. 부처 수가 줄어든 만큼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비중은 커졌다”고 답했다. 박 팀장은 행시 23회로 총무처·감사원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정책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를 거쳐 17대 국회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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