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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 '제3의 길'은 계속된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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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 11면

현재 영국은 고든 브라운 총리의 주도하에 조용한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대처와 메이저, 그리고 블레어 정부를 거치면서 계속된 영국의 정부개혁이 안정적이고 실질적인 제도화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대처리즘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되,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브라운은 10년간 집권한 블레어 총리 밑에서 최장기 재무장관을 맡다가 지난해 6월 27일 드디어 총리 자리에 올라선 인물. 그가 취임 후 7개월간 제시한 개혁 방향과 대안을 보면 실용주의에 기초해 내실 있는 중도 노선(제3의 길)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브라운 정부는 세계화와 국가경쟁력이라는 화두에 맞춰 무역산업부 명칭을 ‘비즈니스, 기업 및 규제개혁부’로 개편하는 한편 재계 대표들을 중심으로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정부 부처나 공무원의 인위적인 감축이 가져오는 상징적 효과와 부작용을 동시에 저울질한 끝에 내린 신중한 선택이었다.

신보수주의를 표방한 대처 정부의 경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게 된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급진적인 관리혁명을 표방하고 나섰다. 1979년부터 95년 사이에 공무원을 20% 정도 감축했다. 작은 정부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조직인력 감축이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약한 노동연금부·환경농업부 등과 같은 비핵심 부서에 집중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아울러 영국의 공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그동안 도입한 개방형 임용제, 책임운영기관 제도, 강제 경쟁입찰제 등이 많은 강점에도 책임성 측면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대처의 경우 개방형 임용제를 활용해 보수진영 인사의 정부 진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엽관(獵官)주의 인사를 부활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정부의 정책기능과 집행기능을 구분해 집행업무를 전담토록 한 책임운영기관 방식 역시 명령지휘계통의 이원화에 따른 문제점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새로운 공공서비스의 공급 권한을 정부·공기업·민간기업 등이 강제입찰 방식으로 결정하도록 허용함으로써 효율성은 높이지만 책임성 확보는 어려운 딜레마에 놓여 있다. 브라운 정부는 이들 제도의 강점을 살리되, 약점은 보완하는 정책 마련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행정의 패러다임이 규제에서 서비스로 변화하는 데 발맞춰 교육·주택·의료 등과 같은 핵심 공공서비스의 분야별 개혁방안을 제시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미래의 국가경쟁력과 직결된 교육 분야의 경우 공교육의 부실화를 개선하기 위해 무관용(zero tolerance) 정책의 기조하에 폐교를 포함한 강력한 성과관리 방침을 천명했다.

그러나 민영화나 민간위탁과 같은 대안에는 손을 대지 않고 있다. 급진적인 민간화 대안이 공기업·준정부기관 등과 같은 중앙정부의 준시장 영역에는 유리하지만 공공성이 중시되는 중앙 및 지방정부의 기초서비스나 사업운영 분야들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전임 블레어 총리가 대처 집권기에 이루어진 민영화·탈규제가 초래한 요금인상과 안전사고를 해소하기 위해 각종 재규제를 도입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브라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의회와 국민에게 권한을 이양함으로써 실질적인 민주행정을 구현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영국의 총리와 정부가 지난 수백 년간 왕실의 비호하에 특권을 행사해 왔다는 인식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역대 총리들은 의원내각제라는 정치체제에도 대통령에 필적하는 독단적 권한을 행사해 왔다. 브라운은 “선전포고권·의회해산권·권력기관 통제권·공공서비스 감독권·사면권 등에 대한 의회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가 독점적이고 개입적인 방식으로 국정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20세기형 행정국가(복지국가)의 논리에서 탈피해 국제기구·지방정부·의회·시장·시민사회 등과 같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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