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본좌’를 기다리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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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 19면

일러스트 강일구

“웃어야 행복해진다”는 행복학 강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젠장, 행복해야 웃지” 하며 비웃곤 했다. 얼마 전부터 웃음소리 광고를 통해 내 생각이 잘못된 걸 알았다. 아빠가 아기를 어르자 마냥 “까르르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보험회사 광고 말이다. 아기의 숨넘어갈 듯한 웃음소리만으로 끝나는 그 광고를 볼 때마다 나도 따라 깔깔 웃게 된다. 그 광고가 정녕 남편 죽고 난 뒤 “10억을 벌었습니다”라는 아내의 섬뜩한 멘트로 욕을 먹던 같은 회사의 광고가 맞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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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의 엄마한테 “언니시죠?”하면서 거짓 아부를 한 뒤 미래의 장모가 “앗하하하하”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영상전화 광고 역시 나를 웃게 만든다. 볼 때는 기가 차서 피식 웃었는데 혼자 있을 때 그 아줌마를 따라 “앗하하하”라고 크게 웃어보니, 신기하게도 기분이 좋아지는 게 아닌가. 그러니 행복학 강사들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안 행복해서 안 웃는 게 아니라 안 웃어서 안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한 번 크게 웃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대선이라는 정치적 이슈와 딱 맞물려 이른바 ‘허경영 신드롬’을 만들어낸 것 아닐까. 허씨는 1997년 대선 때부터 ‘3000명 사회지도부 인사 살생부’ 등과 같은 화끈한 공약으로 일찌감치 재야에서 명성을 쌓았다. 10년이 흘러 2006년 대선에서 그는 정치판과 개그판이 가장 근접·조우한 공약의 황당함으로 다시 한번 화제의 인물이 됐다. 이번에는 초능력으로까지 무장한 허씨의 상업성을 간파한 TV가 아예 그를 띄우자 허경영은 개그맨의 패러디를 무색하게 만드는 ‘리얼 버라이어티 정치 개그’를 선보이며 스타가 되었다.

그 신드롬에 정치판이 반성을 해야 하는지, 개그판이 반성을 해야 하는지 헷갈리지만 아무튼 개그계의 블루오션을 개척한 그에게 국민이 열광했던 까닭은 크게 한 번 웃게 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PD수첩’에서 밝혀진 그의 불법 공천자금이니, 불법 의료행위니 하는 뒷이야기들은 그 오랜만의 웃음에 찝찝함을 남겨줘 안타깝다. 허경영 본좌여, 당신을 보며 갓난아기의 웃음 같은 그런 순수한 웃음 한 번 지을 수 있게 해주시길. 그게 당신의 공약 출산자금 3000만원, 결혼 자금 1억원보다 더 실용적인 선물이 될 수 있으니 말이오. 하루 세 번씩만 웃겨주는 ‘웃음의 본좌’가 되시면 다음 번 대선 때는 흔쾌히 찍어 드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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