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의원들, 넥타이 풀고 토론합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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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국 정치인들이 미국 권력 핵심부의 생각이 뭔지, 미 의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른 채 한미관계를 논하고 있어요. 그런 문제점을 해소하려고 미 상원의원들과 넥타이 풀고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미 공화당 내 한인 최고 실세인 임청근 공화당 정책위원 겸 한미동맹협의회 상임고문(75·左)이 한미간 의원 토론의 장을 열었다. 임 고문은 16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위원장인 존 앤슨 상원의원(50·재선·네바다·右)과 함께 ‘한·미 캐피톨(의회)포럼’ 발족을 선언했다. 포럼은 매달 한국 국회의원과 정계인사들을 워싱턴 의사당에 초청해 상원의원들의 연설을 듣고 이들과 토론을 벌이는 행사를 열게 된다. 최초의 본격적인 의원교류 채널이다.

 미국 측에선 정치외교·국방·경제·문화 등 4개 분야 위원회의 위원장과 소속 의원들이 매달 돌아가며 나오게 된다. 다음달 중순 열릴 첫 포럼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주제로 열릴 계획이다. 미국 측에선 앤슨 위원장을 비롯한 무역 관련 위원회 소속 상원의원이 나올 예정이라고 임 고문은 밝혔다.

 임 고문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가입하는 5개 주요 조직에서 모두 최고회원(royal member)으로 추대돼 있다. 이와 함께 매년 25만 달러 이상 기부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공화당 고액기부자(major doner)’ 명단에도 들고 정책위원직에도 추대된 유일한 한인이다.

 인천 출신인 임 고문은 18세 때인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학도병으로 참전해 미군들과 함께 특수작전을 수행했다. 그 뒤 도미해 농산물 무역업에 종사하다 공화당계 미군들과 인연을 바탕으로 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 대통령의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로부터 36년간 골수 공화당 지지자로 이름을 날리며 당 최고위층과 두터운 인맥을 쌓아왔다. 특히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그의 오른팔 칼 로브 전 백악관 정치고문과는 서로 ‘친구’로 부를 만큼 막역한 사이다. 부시 대통령은 매달 공화당 실세(정책위원)들만 불러 여는 개인 파티에 임 고문을 빠짐없이 초청하고, 수시로 골프를 함께 친다고 한다.

 임 고문은 “외부와 철저히 차단되는 이런 모임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핵문제나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아주 ‘솔직한’ 생각을 토로한다”며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한국으로선 정신을 차려야할 말이 많았다”라도 덧붙였다.

 임 고문은 “많은 한국 정치인이 미국 정치인들을 만나면 깊이 있게 사귀기보다 과시용 사진을 찍는 데만 신경을 쓰는 것 같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한국에 보수 정권이 집권하게 됐지만 그동안 상처가 쌓인 한미관계를 일시에 회복하려 서둘면 역효과만 날 뿐”이라며 “미국 정치인들과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이해의 폭을 넓히고 친분을 쌓아가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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