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대우건설 이어 대한통운 낚아챈 ‘M&A 전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그래픽 크게보기>

박삼구(63·그림)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새해 들어 다시 크게 웃었다. 올해 인수합병(M&A)시장에서 가장 큰 대어(大魚)로 꼽히던 대한통운을 품에 안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웃음은 준비한 사람의 것이다. 17일 박 회장의 파안대소도 그런 것이다. “준비만 잘하면 M&A 기회는 항상 잡을 수 있다.” 지난해 7월 그는 베트남 출장길에 이렇게 말했다. 대한통운 인수를 염두에 둔 채찍질이었다. 이런 준비 덕에 자금조달에 대한 우려를 딛고 경쟁사인 한진과 STX, 현대중공업을 물리칠 수 있었다.

2002년 9월 회장에 취임한 그는 앞으로 그룹이 먹고살 성장 엔진을 찾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물류사업. 지난해부터 대한통운 인수에 총력을 기울였다. 우군 확보를 위해 주요 그룹의 총수들과 연쇄접촉을 했다. M&A를 실무적으로 이끄는 오남수 전략경영본부장은 “사실상 박 회장이 M&A 팀장이다. 모든 걸 진두지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박 회장은 새로운 영역을 찾기보다는 경험이 있는 분야에 더 집중하곤 한다”며 그의 M&A 스타일을 소개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호아시아나는 인수 가격을 높게 써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래서 인수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2006년 대우건설 인수 때 6조4000억원을 써 여윳돈이 그리 많지 않으리라는 분석 때문이었다. 게다가 법원이 대한통운 인수기업에 1년간 유상감자를 못하도록 함으로써 돈을 빌리더라도 큰 이자 부담을 안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랜 시간 준비했으니 결과를 지켜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런 치밀한 준비에서 나온 잇따른 M&A 성공을 두고 재계에서 나도는 말이 있다. “박 회장의 왕성한 식욕이 언제쯤 다 채워질지 궁금하다.”
 
그에게도 실패의 추억이 있다. 2004년 범양상선 인수전 때다. STX그룹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그때부터 그의 치밀함은 더해졌다. 박 회장은 숫자에 굉장히 밝다. 재무제표를 다 외울 정도다. “숫자를 모르면 의사소통이 안 된다. 부장 이상은 회계교육을 받아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M&A팀은 숫자, 특히 입찰 가격 산정에 머리를 싸맸다. 대우건설 인수 때나 이번 대한통운 인수전에도 그랬다. 한 간부는 “최종적으로 인수 가격을 결정한 분은 박 회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략의 귀재’라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당초 인수전에서 금호산업이 인수 주체일 것이란 예상이 나돌았지만 아시아나항공과 대우건설이 주체가 됐다. 그룹 관계자는 “대한통운이 갖고 있는 리비아 수로 건설권과 보유 부동산 개발을 고려해 대우건설을, 항공과 육상물류의 결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아시아나항공을 앞장세웠다”고 설명했다.

◆“500년 기업 만들 것”=이달 5일 박 회장은 신입사원 500여 명과 경기도 광주 태화산에 올랐다. 그는 사원들에게 “새로 들어온 자네들이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환호성이 터졌다. “내년엔, 후년엔 더 좋은 신입사원들이 들어올 것”이라는 말이 이어졌다. 사원들 사이에 긴장이 흘렀다. 이날 박 회장의 메시지는 500년 이상 지속될 기업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는 신입사원들에게 “해마다 더 좋은 사원들이 들어오면 500년 영속기업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올해는 일단 대한통운 인수로 영속성을 이어나갈 튼튼한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문병주 기자, 그래픽=박용석 기자

◆박삼구 회장=광주제일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 금호타이어에 입사, 90년 들어 금호와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를 지냈다. 박인천 그룹 창업주의 3남이다. 박성용·박정구, 두 형이 작고한 뒤 6년 전 그룹 회장에 올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