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기 원조’ 박영복씨 지난해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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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국내 ‘금융사기의 원조’격인 박영복(사진)씨가 지난해 7월 지병인 폐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당시 나이는 70세였다.

 박씨는1974년 부동산등기부와 수출신용장을 위조, 시중은행들에서 74억원을 사기 대출받았다. 82년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6400억원대 어음사기 사건보다 8년 앞선 것이었다. 당시 중앙일보 이원달 기자는 “박씨 사건의 배후에 여당 의원 등 권력 실세들이 있다”고 보도했다가 구속된 뒤 엿새 만에 ‘공소권 없음’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박씨는 이듬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3년을 복역하다 78년 중병을 이유로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았다. 서울대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박씨는 병원 근처 요정을 사무실로 삼아 사기행각을 다시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82년 초 “식물에서 추출한 의약품용 엑기스를 개발해 수출한다”고 속여 시중은행에서 100억여원을 대출받아 가로챘다. 당시 서울지검 특수3부 김성호 검사(전 법무부 장관)는 모 은행 지점장에게서 “형집행정지 중에 돌아다니며 금융사기를 벌이는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결과 박씨가 한강물을 퍼다 담아놓은 것을 “외국에 수출할 엑기스 제품”이라고 속이는 수법으로 부정대출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박씨는 형집행정지가 취소되면서 징역 12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모두 22년간 옥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는 2001년 만기 출소하자마자 다단계업체를 차렸다.“항암 효과가 있는 버섯 가공사업에 투자하면 거액의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1000억원대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2005년 세 번째 구속됐던 그는 구속집행정지 기간 중 숨졌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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