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姜信學 파워컴퓨팅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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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해 12월28일 미국의 유명언론들은 한국인 강신학(姜信學.45.스티븐 강)이라는 사람에 대해 대서특필하며 떠들썩했다.
그날의 뉴스의 인물이었다.세계 컴퓨터업계에서 IBM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애플社가 매킨토시 호환용 컴퓨터의 첫 번째 파트너로 그를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기사 내용들이 애플사의 발표나 姜씨 개인에 대해 한결같이 좋은 이야기로 일관한 것도 아니었다.오히려 애플 같은 굴지의 컴퓨터회사가 기존 마케팅전략에 일대전환을 시도하면서 이름있는 메이커들을 모두 마다하고 어찌해서 무명의 구멍가게( 파워 컴퓨팅社)와 첫손을 잡았느냐는 것이 뉴스의 초점이었다.
사실 애플사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쪽에서 최근 고전의 연속이었다.기술적으로는 IBM보다 오히려 우위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자체생산만을 고집해 왔기때문에 시장점유율이 10%로떨어져 있는 상태였다.이를 만회하기 위한 승부수가 신제품 「파워 PC」를 상품화하는 것을 계기로 매킨토시도 IBM처럼 호환기종의 외부생산을 허용키로 한 것이었고,그 첫번째 파트너로 姜씨의 파워 컴퓨팅사를 선정한 것이다.
도대체 애플은 어떤 배경 속에 한국인 姜씨를 택했고,그는 과연 어떤 인물이길래 세계 컴퓨터시장에 이처럼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물론 그는 지난86년 리딩 에지 모델(大宇제품)을 개발해 미국시장에서 판매실적 3위를 기록케했 던 장본인으로,실리콘 밸리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인물이다.
샌호제이로 그를 찾아갔다.약속한 저녁시간에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으나 3시간 이상을 기다려야했다.姜사장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 때문에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었다.
5명의 도시바 사람들과의 면담을 끝내고나니 중국계 컴퓨터회사가 명함을 내놓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가 하면,또 다른 팀은 텍사스에서 올라 온 컴퓨터업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姜사장이 새로 선보일 기종을 OEM(주문자상표 부착생산 )으로 수입하고 싶다든가,미국내지역 총판권을 달라는 요청들이 물건이 나오기도 전에 쇄도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 현장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姜씨 개인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갔다.바쁜 짬을 쪼개 이틀에 걸쳐 그를 만났다.
-컴퓨터를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인데 왜 미국언론이 저처럼 야단들입니까.
『아직은 미지수지만 이번 애플의 결정이 기존의 세계 컴퓨터시장에 어떤 형태로건 상당한 변화를 몰고올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때문이지요.』 -애플과 IBM의 경쟁판도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뿐 아닙니다.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와 인텔의 합성어인 소위「윈텔」체제에 애플이나 IBM이 어떻게 공동대응해 나가느냐하는 것도 큰 관심사입니다.』 -어떻든간에 애플이 그런 중대한결정을 하면서 왜 직원 20명밖에 안되는 무명의 회사를 첫 파트너로 골랐습니까.숨은 이야기가 있을 법한데.
『사실 처음부터 내가 앞장섰던 것은 아닙니다.
93년9월 어느날 평소부터 잘 아는 진 암달 네트프레임 회장한테서 전화 메시지가 날라왔습니다.그는 IBM에서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설계했던 세계적인 인물인데,매우 중요한 약속이니 다음날 무조건 정해진 식당으로 나오라는 전갈이었습니다.나가보니 올리베티의 엘세리노 피올 부회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이야기인즉즉각 5백만달러를 투자할테니 애플의 매킨토시 호환기종을 생산해낼 용의가 없느냐는 것이었습니다.다른 조건도 매우 유리하게 제시하길래 별도의 예비조사비 25만달러를 앉은 자리에서 받고 오케이했지요.』 -그럼 지금의 파워 컴퓨팅社를 설립할 때는 처음부터 매킨토시 호환기종생산을 전제로 시작했던 것입니까.
『물론이지요.애플이 요구하는 기술 수준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에 필요한 사람들을 뽑아 즉각 시제품의 설계와 생산작업에 착수했지요.』 -아무 보장도 없이 시작했다는 말입니까.
『보장은 없었지만 애플이 종래의 자체생산전략을 바꿀 것이라고확신했습니다.올리베티측에서도 애플에 대해 꾸준히 설득작업을 벌여왔었구요.』 -그러나 다른 경쟁업체들이 가만 있었습니까.
『물론 일본의 도시바를 비롯해 미국의 유수한 컴퓨터회사들도 내부적으로 추진을 해왔었습니다.그러나 우리회사가 그처럼 빨리 시제품 개발을 완성해 들이밀 줄은 몰랐었지요.회사설립 1년만에샘플을 만들어 가지고 가니까 애플쪽에서도 깜짝 놀라더군요.』 -언제부터 시판에 들어갑니까.
『금년 3~4월부터로 잡고 있습니다.』 -사업전망은 어떻습니까. 『첫해에 10만대 판매에 1억달러 정도의 매상은 문제없다고 봅니다.5년내에 최소한 10억달러 규모를 기대합니다.』 -판매전략은 어떻게 세워놓고 있습니까.
『생산의 절반은 「파워컴퓨팅」이라는 자체 브랜드로 미국시장에서 팔고,절반은 주문자상표로 해외시장에 수출할 계획입니다.』 -다른 사업계획은 또 없습니까.
『이것 말고도 현재 IBM.애플.캐논등과 함께 IBM과 애플의 완벽한 호환기종 컴퓨터를 동등한 자격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96년에 선을 보일 예정인데 이것이 제대로 되면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겁니다.』 -姜사장 스스로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컴퓨터의 설계전문가이기도 하지만 세계컴퓨터업계의 흐름을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겠지요.최근까지도 세계 10대컴퓨터회사중 5개회사의 컨설팅을 해왔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이 더 많았습니다.』 -지난 86년 리딩 에지 모델을 개발했을 때 姜사장은 『장차 한국이 세계컴퓨터 시장을 석권할 것』이라고 예언했었는데 어떻게 된겁니까.
『잘못된 예상이었습니다.한국 컴퓨터산업의 장래는 불행하게도 매우 비관적입니다.』 -무엇 때문이지요.
『컴퓨터 산업을 성공시키기에는 한국기업들은 오버헤드 코스트가너무커요.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경직성 때문에 의사결정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경영자들이 근본적으로 컴퓨터 비즈니스의 테크놀로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럼 일본입니까.
『아니요.
일본도 마찬가지 이유로 비관적입니다.대만이 가장 유력합니다.
기본적으로 대만의 중소기업형 비즈니스가 고도의 순발력을 필요로하는 컴퓨터 비즈니스에 가장 적합할 뿐 아니라 요즘은 대형투자도 활발하게 일어납니다.1억~2억달러 정도의 벤처 캐피털을 모으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더구나 실리콘밸리의 일류 중국인 엔지니어들이 최근들어 대거 대만으로 돌아가서 컴퓨터 공장을 차리고있는 것도 그들의 강점입니다.』 -한국 컴퓨터산업의 회생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국의 기업인들은 꼭 소유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데,그래서는곤란합니다.이번 올리베티의 경우 오히려 자기네는 지배주주가 안되겠다는 것이 요구조건이었습니다.특히 기술자체가 휙휙 바뀌는 컴퓨터산업에서는 소유권에 집착하다가는 아무것도 못합니다.그같은배타적인 성향때문에 실리콘밸리에서도 한국이 인도와 함께 투자를가장 꺼려하는 나라로 낙인 찍혀있는 것이지요.』 고등학교를 마치고 도미,미시간대에서 컴퓨터엔지니어링을 전공한 姜사장은 그동안의 축적된 실력을 바탕으로 바야흐로 세계 컴퓨터시장이 주목하는 「떠오르는 별」이 된 것이다.『빌 게이츠 쯤이야』하는 姜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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