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승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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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옛일을 강물에 실어 보내려는 정서는 일반적이다. 중국에서는 강이 대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서쪽이 높고 그 반대편이 낮은 지형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답답하고 억울한 심사를 지닌 이의 경우 강물에서 그를 내려 보낼 때 ‘동쪽의 흐름에 던진다(付諸東流)’는 성어를 사용한다.

송(宋) 왕조가 들어설 무렵 지금의 중국 남쪽에서 남당(南唐)의 왕실을 끌어갔던 이욱(李煜)은 왕이라기보다 천재적인 문인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가 송 태조 조광윤에게 잡혀 포로로 북녘에 끌려왔을 때 지은 사(詞)의 말미도 그렇게 맺어진다. “묻노니, 시름은 얼마나 되오? 마치 온 강 봄물이 동으로 흐르듯 하오(問君能有幾多愁, 恰似一江春水向東流)”(지영재 편역 『중국시가선』).
 
불어난 봄물이 강을 가득 채운 채 동쪽으로 흐른다. 슬픔과 회한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표현이다. 그 비유가 크면서도 아름다워 사람들이 무릎을 치는 명구다.

그러나 앞서 일어난 일을 강물에 던져 잊어버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한(情恨)의 세계에 그치는 게 좋다. 현실에서는 앞의 일을 잘 따져 뒷일을 새로 열어가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대만의 장제스(蔣介石), 중국 개혁·개방을 주도한 덩샤오핑(鄧小平)도 즐겨 사용했던 경구가 있다. 앞의 것을 이어받아 훗날에 대비하자는 ‘계왕개래(繼往開來)’다. 같은 뜻의 ‘승전계후(承前啓後)’ ‘승상계하(承上啓下)’ 등이 있으니 중국인의 현실 감각에서 이어받아(承) 새로 연다(啓)는 ‘승계’의 관념이 얼마나 철저한지 새겨 볼 일이다.

이게 바로 실용이다. 과거를 일거에 부정한다면 얻어들이는 효과는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앞과 뒤를 곰곰 따져보는 데에서 진정한 실용은 생겨난다. 그를 내세우지만 새 정부를 준비하는 인수위원회의 대북 정책은 정작 이 점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덜렁 통일부 폐지안을 확정한 인수위는 과거 정책을 모두 뒤집는 데에만 몰두하는 인상이다. 지난 10년의 유화적인 대북 정책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더라도 그에 비길 만한 성과가 많다. 현실적으로는 10년 동안 공적자금이 어림잡아 100억 달러 이상 들어간 결과다.

민족통일과 화해는 우리에게 매우 어렵고도 중요한 작업이다. 그만큼 신중을 기해야 할 분야라면 생각을 거듭해야 한다. 검토하는 데에만 최소 2개월이 넘는다는 과거 대북 정책의 성과 자료를 인수위가 모두 살펴보았는지 궁금하다. 실용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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