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인 한마디에 … 인수위, 유류세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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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유류세 인하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유류세를 내리면 대형차를 타는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가는 게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인수위는 임기 내 유류세를 10% 내리기로 했지만, 이 당선인의 지적에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이 당선인의 지적은 노무현 정부가 수없이 되풀이한 논리다. 재정경제부는 그간 ‘중대형차가 소형차보다 많아졌기 때문에 유류세를 내려봤자 부자만 득을 본다’는 논리를 펼치며 유류세 인하 여론에 맞서왔다.

인수위로선 이 당선인의 지시를 따르자니 묘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노무현 정부의 주장을 인정하자니 모양새가 우습게 된다는 것이다. 인수위 관계자는 “이미 10%를 내리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유류세 인하를 보류하기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서민에게 실제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15일 인수위에 따르면 대안으로 ‘에너지 바우처’ 제도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에너지 바우처란 일종의 쿠폰 제도로 저소득층에게 석유 등을 무료로 살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석유 판매자는 받은 쿠폰을 정부에 제시해 사후에 비용을 보상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주택이나 교육 분야에서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해 저소득층을 지원해 주고 있다.

이 경우 에너지 과소비층은 배제되면서 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지만, 이는 세제를 손질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재정 지출 정책이란 점에서 실제 시행에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게다가 쿠폰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고, 실제 나눠주는 데 인력과 시간 등의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는 게 걸림돌이다.

한편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과 김진표 대통합민주신당 정책위의장은 전날 회동을 하고 현재 17%인 유류세 탄력세율 적용 폭을 30%까지 늘리는 방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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