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맞아죽은 詩人 단순變死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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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폭행으로 숨진 사람을 단순변사(變死)로 처리해 보름동안이나 병원안치실에 방치한 경찰의 무성의는 분노를 자아낸다.시체를 처음 발견했을 때는 단순변사로 알았을 수 있었다고 치자.그러나 시체를 병원으로 옮겨 부검까지 실시하고도 적극적인 수사에 착수하지 않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타살의 의심을 갖고도 귀찮다는 생각에서 단순변사사건으로 얼버무리려 했던 것은 아닌가. 숨진 시인 박종권(朴鍾權)씨의 가족들은 사건이 난지 1주일만에 경찰에 행방불명신고를 했고,지난 2일엔 수사의뢰까지 했다.행방불명신고가 접수됐다면 병원 영안실의 변시체를 확인케 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더구나 폭행사건 내용의 신고까지 있었다면 더욱 더 그랬어야 했다.그러나 검찰에 의뢰해서야 겨우 시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니 그동안 경찰은 손을 놓고 있었던 셈이다.
경찰은 독자적으로 아무 일도 못하는가.이런 근무자세와 의식상태로 어떻게 수사권의 독립을 바라겠는가.
변시체가 발견되면 그 정확한 사망원인을 가리는 것은 경찰의 기본업무일 것이다.설사 단순변사의 가능성이 크고 타살등의 의심은 적더라도 그 작은 가능성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경찰로서의 직업적 책무일 것이다.그런데 여러 곳에 타박상이 있음이 드러났는데도 그저 신원수배나 하고 있었다니 어이가 없다.
당국은 어떻게 해서 이같은 무성의한 사건처리가 이루어지게 됐는가를 철저히 밝혀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아울러 변시체의 처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도 새로이 해야 한다고 본다.이번 경우 말고도 피살을 단순변사로 처리해 넘기는 경우가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번 사건의 내용을 보면 강남 중심지에서도 심야영업이 여전하고,술집풍속은 살벌하기 그지없음이 드러나고 있다.요즘 조직폭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조짐이 이곳저곳에서 엿보이고 있다.경찰은 이번 사건을 반성의 계기로 삼아 치안활동 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근무여건개선에 대한 사회적 지지도 경찰이 제몫을 다해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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