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백지” “지도막막” 자율통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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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시모집 논술이 치러진 11일 학부모들이 고사장 앞에서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대입업무 자율화를 앞두고 일부 대학의 논술 문제가 지나치게 어렵게 출제돼 논란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

 15년간 논술을 가르치고 있는 임근수 한국교원대 부설고 교사는 13일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논술 문제를 풀어보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는 “통합교과형 논술 문제가 쉽지 않아 앞으로 논술 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며 “입시 자율 바람을 타고 논술 문제가 어려워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신동원 휘문고 교사는 “대학이 고교 교육과정 내에서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문항을 개발해 고교에 제시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대학과 고교가 머리를 맞대면 고교 교육도 정상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타율 교육’에 젖어 있던 일선 학교들이 ‘자율 성장통(痛)’을 앓고 있다. 대학별 전형 방법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대학별 논술고사의 난이도도 예년보다 높아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이르면 2009학년도부터 교육부의 대입 업무를 대학 자율로 넘길 예정이다. 이에 따라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혼란을 덜기 위한 고교와 대학들의 협력과 고민이 시작되고 있다.

 ◆고민하는 고교=서울대와 고려대 논술을 치른 D고 나모군은 “여러 교과 지식의 통합형이나 증명 같은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았다”며 “백지를 낸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정시 자연계 논술에서 생소한 문제가 등장하자 일선 고교에는 비상이 걸렸다. 학생들에게 교과서 내용만 익히도록 하는 기계식 교육으로는 대학별 고사에 대비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효근 보인고 교사는 “방과후 수업을 강화해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심화 학습을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성 영동고 교사도 “상위권 대학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학생은 수능과 별도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라며 “대학교 1학년 교재인 일반화학과 일반물리, 고교 과학Ⅱ를 연계해 가르치는 수준 높은 교육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선 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이 사교육으로 몰려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학원들이 영어 지문이나 새로운 자연계 논술 문제 대비반을 벌써부터 만들고 있다”며 “입시 자율에 따른 고교 교육 정상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머리 맞댄 대학-고교=고려대는 올해 12월 수능 시험 직후 전국 단위의 논술 캠프를 함께 열 것을 연세대·성균관대 등 서울 소재 대학들에 제안했다. 대학들이 연합해 사흘씩 수험생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출제위원인 교수들이 논술 출제 경향과 작성법을 직접 가르치자는 것이다.

고려대는 지난해 12월 수험생 1만여 명과 교사들을 불러 무료 논술 캠프를 열었다. 고려대 박유성 입학처장은 "10여 개 대학이 참여하면 한 달간 진행할 수 있다”며 “대학이 앞장서서 사교육을 깨고 입시 자율화에 따른 학부모·수험생·교사들의 고충을 덜어줄 수 있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도 13일 자율화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입시 자율화에 따른 ‘교육·연구 질 향상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김형준 서울대 기획실장은 “30여 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학생자율선발과 학사관리·재정 등 학교 시스템 전반의 자율화 문제를 연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는 고교와의 협력 방안도 마련할 예정이다.

강홍준·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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