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관료들 얘기 그대로 수용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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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오른쪽에서 셋째)이 13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백성운 행정실장, 곽승준·박형준 기획조정위 위원, 맹형규 기획조정위 간사,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공동위원장, 이 위원장, 김형오 부위원장, 윤진식 국가경쟁력강화특위 부위원장. [사진=오종택 기자]

 대통령직 인수위는 13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155개 국정과제를 보고했다. 당초 보고는 2시간으로 예정됐다. 그러나 이 당선인이 일일이 보고 내용을 검토하는 바람에 무려 4시간40분으로 늘었다.

 이 당선인이 족집게처럼 핵심을 꼬집자 참석했던 위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보고회를 마치고 나온 한 위원은 “80명이 보름 동안 만든 것보다 당선인의 아이디어가 낫더라”고 말했다.

 이 당선인에게 보고된 내용 중에는 통신비 경감과 유류세 부담 완화, 고속도로 통행료 출퇴근 시 50% 할인, LPG 경차 허용 등 서민의 생활비를 줄이는 방안들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 당선인은 썩 흡족해하지 않았다 한다. 이 당선인은 인수위원들에게 “정부 쪽에서 보고하는 안을 그대로 수용해 만들지 말고 창조적이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공직 사회의 기존 관행을 따르지 말고 탈피하라”고 당부했다고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이 전했다.

 특히 “아이디어는 창조적으로, 실행 방법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으로 접근하라”거나 “안정 속에 변화를 추구하지만 효과적이고 강력한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한다.

 이 당선인은 인수위 보고 내용 중 어떤 부분을 못마땅해 했을까.

 통신요금의 경우 인수위는 “통신요금을 인하하겠다. 하지만 인위적·강압적으로 하자는 건 아니다. 경쟁을 통해 자율적으로 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 한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이 당선인은 “통신 과소비도 문제”라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했다. 소비 행태에 대한 이해 없이 통신요금을 내릴 경우 과소비만 부추기는 등 실효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문제를 다각적으로 검토하란 지시였다.

 정부 예산 10% 감축 방안도 이 당선인의 성에 차지 않았다. 인수위에선 부처별 절감 대책을 종합 보고했다고 한다. 이 당선인은 “감사원이 예산 낭비를 지적한 사례를 왜 참고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한다. 정부 해당 부처만의 시각에서 벗어나라는 조언이었다.

 법인세 5% 포인트 인하를 두고 인수위는 “법인세를 인하할 경우 세수가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는 내용을 보고했다. 이 당선인은 “법인세를 점진적으로 낮추면 결국 경제가 활성화돼 법인세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감세=세수 감소’란 통념을 깨고 보라는 주문이었다.

 이 당선인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인수위 보고를 놓고도 우려했다. 인수위가 장기주택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인하와 개발부담금제 개선 등 부동산 규제 완화책만 세 건을 연달아 보고하자 “기본적으로 지금의 주택 가격은 비싸서 더 올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문제의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에도 당 일류국가비전위에서 마련한 정책을 두고 문제를 삼은 적이 있다. “근본적인 고민과 해결책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고 당 관계자들은 전했다.

 ◆오늘 당선인 기자회견=인수위가 보고한 155개 과제 중 81개가 ‘시급’ 과제로, 나머지 74개가 ‘속도 조율’ 과제로 분류됐다. 경제 분야는 보고된 52개 중 절반이 넘는 32개가 ‘속도 조율’ 판정을 받았다.

 이 당선인은 이날 보고 내용을 토대로 14일 오전 새 정부의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는 신년 기자회견을 연다. 인수위는 14~19일 2차 업무보고를 한 뒤 31일 지역 현장을 방문해 민심을 청취한다. 그리고 국정과제 로드맵을 확정한 뒤 다음달 17일 당선인에게 국정운영 최종보고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고서를 가지고 한나라당과 2월 19일 정책협의를 하고 3월 초 인수위 활동 백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글=고정애·권호 기자 ,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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