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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파워 또 파워 … 이를 악물고 ‘지옥 훈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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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20면

이승엽이 엄청난 중량을 들어올리며 웨이트 트레이닝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최첨단 훈련 기법을 총동원해 몸을 만들며 2008년 시즌을 대비하고 있다. [대구=신동연 기자]

대구에서 만난 이승엽의 표정은 아주 밝았다. 힘든 한 해를 보냈고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앞두고 있지만 자신 있게 새해를 열고 있었다. 이승엽의 나이 어느덧 32세. 과거 여러 거포가 힘이 떨어져 쇠락하기 시작한 나이다. 지난해 10월 왼손 엄지 인대 접합수술까지 받아 아직도 손가락을 쉽게 구부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기어코 오는 3월 7일 대만에서 열리는 베이징올림픽 최종 예선전에 나가겠다고 했다. 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심장이라는 4번타자도 빼앗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자신감 뒤에는 지지 않겠다는 오기가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념이 있다. 무엇보다 숱한 고통을 이겨낸 자기 확신이 있다.

2008년 巨人 4번 타자 지키려는 이승엽

위기와 친구가 되다 이승엽에게 새해는 희망이다. 그만큼 2007년엔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지난해 2월 일본 미야자키 스프링캠프 때 왼손 엄지 통증이 심해졌다. 타격훈련이 끝나면 손이 떨려 장갑을 벗지 못해 통역원이 도와줬을 정도였다. 이승엽은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그의 왼손 엄지에는 4㎝ 정도의 수술자국이 있다. 8개월 동안 고통을 참고 시즌이 끝난 뒤에야 메스를 댔다. 이승엽은 “수술 부위가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올림픽 예선 전까지는 좋아질 것으로 믿는다. 여기 말고 아픈 곳이 없으니 올해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며 웃었다.

왼손타자인 이승엽은 왼팔을 이용해 공을 찍어 때리는 스윙을 하는데 지난해에는 왼손이 아파 힘을 주지 못했다. 동료들이 타석에 서는 일 자체를 놀라워하는 가운데 30홈런(타율 0.274)을 쳐냈다. 힘을 별로 쓰지 않던 오른팔 파워를 이용한 덕분이다. 부상과 싸우며 시즌 중에 몇 차례나 폼을 바꾼 그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이승엽은 일본 진출 첫해인 2004년(당시 지바 마린스) 일본야구에 무릎 꿇었다. 그는 스스로를 지옥에 던져 심신을 개조했고, 야구인생의 첫 위기를 이겨냈다. 지난해에는 자신과 싸웠다. 2006년 성적(41홈런·타율 0.323)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결코 패배하지는 않았다.
 
스트레스와 공생하다

이승엽은 오창훈 세진헬스클럽 관장의 도움을 받으며 개인훈련 중이다. 오 관장은 “여기서 훈련한 4년 중 요즘이 가장 편안하고 즐거워 보인다”고 귀띔했다.

사실 이승엽은 마음을 놓을 처지가 못 된다. 지난해 요미우리는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하고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주니치 드래건스에 패해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 대표는 “외국인 선수 때문에 졌다”며 핏대를 세웠다. 일본 최고 연봉(4년 총액 30억엔)을 받는 이승엽에게 화살을 돌린 것이다.

곧바로 요미우리의 거물사냥이 시작됐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에이스 세스 그레이싱어와 4번타자 알렉스 라미레스를 사들였다. 특히 오른손 타자 라미레스가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은 것은 이승엽에게 적잖은 압박이다. 이승엽을 비롯한 지난해 30홈런 이상을 때린 좌타자 4명이 라미레스를 중심으로 앞뒤에 늘어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승엽은 “좋은 선수가 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팀 전력이 상승하고, 상대팀의 견제가 분산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자기 힘으로 라미레스를 누르고 4번타자를 수성할 수 있다는, 꼭 그래야 한다는 배짱과 의지도 엿보인다. 어린 나이부터 숱한 도전과 응전을 경험한 그는 단맛도 쓴맛도 담담하게 삼키고 있었다.

방심도 여유도 아니다

그렇게 웃고 있지만 이승엽은 지독하다. 야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뭐든 다 한다. 어떤 노력도, 스승도, 실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승엽은 지난해 11월 체중이 100㎏에 육박했다. 수술 후 훈련을 할 수 없어 친구들을 만나 마음껏 쉬고 먹은 탓이었다. 1년간 억눌려 있던 스스로에게 준 휴가였다. 그는 “허리둘레가 99㎝까지 나가서 충격 받았다”고 웃었다.

이승엽은 한 달여 휴식을 끝내고 12월 16일부터 대구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2주 만에 정상 체중 95㎏을 회복했고 허리둘레도 10㎝ 줄였다. 이승엽의 체계적인 훈련을 돕고 있는 오 관장은 “이승엽처럼 노력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최정상에 있는 선수지만 늘 도전자 같은 자세로 훈련한다”고 전한다.

오 관장은 맞춤 프로그램을 짜서 치밀하게 훈련의 양과 내용을 조절한다. 매일 2~3시간 진행되는 웨이트 트레이닝은 고통의 연속이다. 각 부위의 파워를 모아서 쓰는 법을 근육이 기억하게 하기 위해 힘을 쭉 뺀 뒤에 훈련강도가 오히려 더 높아진다.

이승엽은 비명을 지를지언정 못하겠다는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있다. 오 관장은 “몇 년 동안 힘 떨어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파워는 남아돈다. 부상만 주의하면 된다”고 자신했다.
 
각종 훈련법의 총결집

이승엽은 4년간 전문훈련을 받고 갖가지 부상과 싸운 끝에 트레이닝 전문가가 다 됐다. 외부에서는 딱히 조언을 구할 데가 없다. 이승엽은 오 관장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항상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있다.

얼마 전 이승엽은 손잡이 부분이 부풀어 오른, 이전과 다른 모양의 배트를 주문했다. 공 끝이 좋은 일본 투수들을 상대하다가 왼손 엄지 통증이 누적됐었다고 판단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그립과 타법을 바꿔야 한다고 결론지었기 때문이다.

또 웨이트 트레이닝이 끝나면 식물에서 추출한 원적외선 수용액을 몸에 뿌린다. 한 번에 30만원 정도 드는 비싼 치료법이다. 이승엽은 지난해 도쿄 집에 3000만원이 넘는 산소캡슐을 사들이기도 했다. 모두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피로에서 회복하기 위해서다.

식이요법도 철저하다. ‘소만큼 먹성 좋다’는 이승엽이지만 훈련 중에는 고단백 음식만 절제해서 먹는다. 감자와 계란 흰자, 단백질 보충제 외에는 입에 대지 않는다. 이승엽은 “체중을 90㎏으로 낮춘 뒤 다시 근육을 채워 5㎏을 늘릴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를 비워내고 새해를 채우겠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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