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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의 毒 빼는 이 한 방울의 눈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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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17면

‘악어의 눈물’일지 몰라도 통했다. 힐러리 클린턴의 눈망울에 터질 듯, 터질 듯 맺힌 눈물이 뉴햄프셔주의 표심(票心)을 움직였다. 미국의 대권을 향한 민주당 경선은 이제 예측불허의 롤러코스터 위에 올랐다.

정치·심리 전문가들은 힐러리의 눈물이 연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클린턴 부부의 정치 참모인 글로리아 케이브는 “그녀의 뇌가 감성을 찾았다. 정말 실감나는 눈물이었다”고 말했다.

제때 흘리는 눈물은 정치적 영향력도 크지만 눈의 윤활·살균 작용 등의 측면에서 의학적으로도 중요하다. [중앙포토]

눈물의 양조차 절묘했다. 미국에서는 정치지도자가 펑펑 울면 자제력의 상실로 친다. 1972년 민주당 대선주자 에드먼드 머스키가 선거운동 도중 ‘중뿔난 아내’를 옹호하며 눈물을 흘린 것, 87년 공화당의 팻 슈로더가 대선출마를 포기하며 남편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린 것은 몰락을 재촉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선거에서도 2002년 한국 대선에서 톡톡히 효과를 봤던 ‘노무현식 눈물’을 도입하는 분위기다. 힐러리뿐 아니라 공화당의 미트 롬니도 지난해 이라크전에서 숨진 병사의 관을 접했을 때, NBC방송 시사프로그램에서 종교관에 대해 얘기하다 ‘핑 도는 눈물’을 보여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지난해 시애틀 타임스가 ‘빌 클린턴은 울 수 있지만 힐러리는?’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낼 정도로 냉정한 이미지의 힐러리로서는 이번의 ‘핑 도는 눈물’이 보약이 됐다. 이 눈물은 ‘미국에서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바꿔야 한다’는 가장 확실한 메시지를 담아 폭스뉴스와 CNN 등을 통해 유권자에게 전달했다.

“원래 갖고 있는 이미지에 따라, 그리고 어느 시점에 눈물을 보이느냐에 따라 득이 될 수도 있다. 힐러리의 눈물은 유권자의 ‘강자에 대한 거부감’을 씻어줬다.”(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유범희 교수)

“뇌의 변연계는 본능적·감정적으로 선호를 결정하는데 힐러리는 눈물이라는 감정적 매개체를 통해 이 부위를 공략했다. 변연계가 일단 결정을 하면 전두엽의 이성적 판단은 그 결정을 합리화한다.”(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권준수 교수)

눈물의 정치학은 최근 부각되고 있지만, 의학적으로 눈물은 오래전부터 중시돼 왔다.
눈물은 눈물샘에서 분비돼 각막을 촉촉이 축이며 윤활·살균작용을 한다. 특히 눈동자는 핏줄이 연결돼 있지 않아 눈물을 통해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받지 않으면 썩는다.

눈물은 98% 이상이 물이고 나머지 1~2%는 리소자임, 락토페린, 리보뉴클레아제 등 화학물질로 구성돼 있다. 이 화학물질이 항균, 항암, 항바이러스 작용을 하기 때문에 제약회사 연구진은 눈물에서 항암제와 에이즈 치료제 등을 개발하고 있기도 하다.

눈물을 적시(適時)에 흘리는 것도 건강에 중요하다. 울 때 몸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쌓인 독성물질이 눈물을 통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눈물을 ‘카타르시스’(배설)로 표현한 그리스 작가들이 의학적으로도 옳았던 것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슬플 때 울지 못하면 우리 몸의 다른 장기가 운다”고 말한다. 미국에선 동맥경화 환자 중 소리내 우는 사람이 슬픔을 속으로 삭이는 사람에 비해 심근
경색이 올 확률이 훨씬 낮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눈물은 너무 적어도 탈, 많아도 탈이다. 눈물이 적으면 따가워 견디기 힘들 뿐만 아니라 눈병에 걸리기 쉽다. 눈물이 넘치면 세상을 흐릿하게 봐야 하고 수시로 닦아야 한다.

눈물이 적은 ‘안구건조증’은 노화로 눈물의 분비가 줄거나 류머티스관절염·루푸스·얼굴신경마비 등으로 눈물분비선이 상할 때 주로 생긴다. 약물 부작용으로 눈물이 적게 나오기도 한다. 이럴 땐 대부분 인공눈물을 넣는 방법으로 증세를 누그러뜨린다. 인공눈물이나 알약에 알레르기반응이 있으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 깔때기 모양의 실리콘 소재 물질을 눈과 코를 연결하는 곳에 넣어 눈물이 새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안구건조증은 라식수술을 받으면 악화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반면,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을 ‘유루증(流漏症)’이라고 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눈물이 적은 안구건조증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덧눈물샘에서 눈물이 적게 나와 눈이 자극을 받기 때문에 주눈물샘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유루증 역시 인공눈물로 안구건조증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눈물 양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고 코눈물관이 좁아져 눈물이 넘치는 것일 뿐, 실제로는 적어진다. 심하면 눈과 코 사이에 새로운 길을 뚫어야 한다.

눈을 촉촉하고 아름답게 보이려면 충분하게 자는 것이 중요하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이 맞다. 요즘처럼 건조한 날에는 가습기를 트는 것이 눈을 촉촉하게 하는 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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