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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특사로 본 정치·외교 방정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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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10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오후 서울 통의동 집무실에서 4개국 파견 특사단과 환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상득 국회부의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권철현 의원, 전여옥 의원,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 유정복 의원, 이 당선인, 정몽준 의원, 이재오 의원. [연합뉴스]

16대 대선이 끝난 뒤인 2003년 1월 13일.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부시 미 대통령의 특사로 방한해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을 예방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외교관들은 켈리 차관보가 ‘헐레벌떡 왔다’고 했다. 주한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고 이후 반미 촛불시위가 확산된 가운데, “반미면 어떠냐”며 과거 정권 때와 아주 다른 미국관을 보인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워싱턴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바깥의 시선이 이런지라 노 당선인 측도 대미 특사단을 꾸리던 와중이었다. 정대철 민주당 최고위원을 단장으로 추미애 최고위원과 윤영관 인수위 외교통일안보 분과위 간사, 문정인 연세대 교수 등이 특사로 파견됐다.

‘대주주’ 배려하고 MB식 견제구도 만들어

5년 전 특사단의 주 임무는 노 당선인에 대한 오해 풀기였다고 외교관들은 회고한다.
국제사회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노 당선인을 소개하면서 특히 그가 주장한 대미 자주외교가 반미나 주한미군 철수를 이야기한 게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다고 한다. 일각에서 제기되던 북한 폭격론에 대한 당선인의 반대 입장도 밝혔다. 체니 미 부통령을 만난 특사단은 당선인 측의 북핵 3대 원칙(북핵 불인정,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한국의 주도적 역할)도 전달했다.

당시 4강 특사단장 구성은 대선에 기여한 이들에 대한 답례의 성격이 컸다. 미국과 일본 단장은 정대철 최고위원, 중국은 선대위 기획본부장을 맡았던 이해찬 의원, 러시아는 조순형 공동선대위원장이었다. 따라서 세간의 관심은 이들에게 쏠리지 않았다. 수행특사로 들어간 윤영관(첫 조각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이 됨) 인수위 간사와 이종석·서동만·서주석 위원 등 노 당선인의 외교안보 정책을 펼쳐갈 신진 학자 세력에 초점이 모아졌다.

특사의 정치학은 4강뿐 아니라 매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에도 이어졌다. 노 당선인은 정동영 민주당 의원을 파견했다. 대선 전날 종로 유세에서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 적힌 피켓을 든 사람도 있다. 속도 위반 말라. 대찬 여성인 추미애 최고위원도 있고, 정동영 고문도 있다”고 언급한 뒤여서 차기 주자 쪽으로 해석이 모아졌다. 이를 입증하듯, 정 의원은 다보스에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을 만나 노 당선인의 친서를 전달하고, 연설에서 북한판 ‘마셜플랜’도 소개했다. 그는 2004년 통일부 장관에 임명됐다. 17대 대선과정에서 노 대통령과 각을 세울 때까지 정 의원은 ‘노의 후계자’ ‘권력 제2인자’로 불렸다.

이명박 당선인의 특사단에 담긴 함의를 보자. 일단 WEF 특사로 사공일 대통령인수위
산하 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을 파견키로 했다. 후계론보다는 ‘경제’에 방점을 찍었다. 4강 특사 면면은 신여권의 대주주를 배려하고 챙긴 모양새다. MB(이명박)식 견제 구도 창출로 보는 시각도 많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당선인과 박근혜 전 대표가 중국 특사를 제의하고 수락하는 과정은 두 사람 모두에게 윈윈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대선 과정에서 박 전 대표의 도움을 받았음을 부인하기 어려운 당선인으로선 박 전 대표에게 주요국 특사를 제의하고, 박 전 대표는 공천 갈등이 있음에도 외교에는 협력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국민에게 상당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줬다는 것이다.

정몽준 의원(미국 특사단장)의 경우도 BBK 수사발표를 앞두고 합류, 승리에 큰 역할을 했는데 당선인은 이에 대해 보답하면서 향후 당권 경쟁에서 박 전 대표와의 견제 구도를 만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일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러시아 단장)의 경우 활동 복귀의 의미가 큰 것으로 풀이된다.

이 의원은 대선 조직을 총괄해온 핵심 MB맨으로 박 전 대표 측과의 갈등 과정에서 ‘토의종군’을 선언했었다. 외교 활동을 통한 활동 재개는 이 전 위원이 기존의 조직계보에서 정책계보로의 전환을 시사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는 인수위에서도 한반도 대운하 태스크포스팀 상임고문을 맡았다. 김 교수는 “대선 막바지 토의종군을 선언하며 뒤로 물러섰던 이 의원에 대해 이 당선인이 섭섭함을 풀어주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4강 가운데 대러시아 외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이번엔 좀 다르다는 평가다. 방미 특사단과 방일 특사단이 ‘신 한·미동맹 선언’ ‘셔틀 정상외교 재가동’ 등 관계 복원을 위한 총론 위주의 의제를 다룰 예정인 반면 러시아는 에너지 개발 협력 사업 등 실질 이슈를 포함했다. 수행 특사에는 정태익 전 러시아 대사와 권원순 인수위 국가에너지위원회 전문위원이 포함됐다.

일본 특사단은 이상득 국회부의장(5선)이 이끈다. 이 부의장은 대선기간 당선인의 수호자 역할을 해온 친형. 앞으로도 힘이 쏠릴 공산이 크다. 일어에 능숙하고, 한·일간 현안에 이해가 깊다. 수시로 대통령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사이다. 일본 측은 이번 특사 파견에 만족하면서, 한·일 관계 복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1970·80년대 한·일 갈등이 생기면 양국 실세 의원들이 이를 진화해온 막후 외교가 있었다”면서 “이번 특사 파견이 양국 의원 간 커넥션 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5년 전 주변국에서 한국의 당선인을 찾은 특사는 켈리 미 차관보와 일본의 모리 요시로 전 총리다. 모리 전 총리는 이번에도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친서를 갖고 한국을 찾았다. 이 당선인의 치적 브랜드 중 하나인 청계천을 걸어온 뒤 이를 당선인에게 설명하는 성의를 보였다. 14일 왕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당선인을 예방한다. 중국으로선 이례적인 경우다. 외교 소식통은 “당선인 측에서 한·미관계를 강조하고 한·미·일 협력을 강화할 것이란 정책기조가 강조되자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켈리 특사가 노 당선인을 찾은 상황과 유사해 보인다.

‘당선인의 특사 파견’이라는 외교 행위는 국내적 정치 갈등을 순화시키는 도구이자, 대외적으로는 새 정부 출범 후 우호적 양자관계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순기능이 물론 있다. 특히 취임 후 공식 외교 활동 개시 전에 하는 특사 외교가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으로선 저비용 고효율의 실리를 확보하는 작업일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당선인이 취임 전 특사를 보내는 나라는 거의 없다. 국격(國格)이 낮아 보일 수 있다. 향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국제상례는 취임식 때 상대국이 축하 사절을 보내고, 당선인은 취임한 뒤 정상외교를 통해 본격 외교에 들어간다. 한국도 다르지 않았다. 98년 후보 시절 “당선되면 직접 방미하겠다”고 했던 김대중 당선인은 ‘한국의 경제난을 부각할 부작용이 있다’는 여론 속에 계획을 철회했다. 특사도 보내지 않았다.

특사 파견은 2003년 노무현 당선인 시절 시작됐다. 당시 업무를 맡았던 한 인사는 “국제사회 특히 미국이 당선인에 대해 갖고 있던 의구심을 풀어야 할 절박함, 고조된 북핵 문제 등이 특사 파견의 논리로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최근 방한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부시 대통령의 특사가 아닌 자격으로 당선인은 물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윤병세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을 거침없이 만난 것은 외교 의전 면에서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명박 당선인의 특사 파견이라는 외교 행위는 5년 전의 유산을 비판적 검토 없이 이어받은 느낌이 있다. 특사단이 상대국 최고지도자를 만나 당선인의 친서를 전달하려 무리수를 둘 수 있고, 이것이 취임 후 외교의 부담이 되는 측면도 있다.” 전직 고위 외교관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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