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축가를 위하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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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03면

지금은 문화재청장으로 일하는 유홍준 선생이 미술평론가였던 몇 년 전에 한 얘기를 가끔 떠올립니다. 신문 문화면에 화가와 조각가의 전시회 소식이나 작품 비평은 실으면서 왜 건축가가 새로 지은 집 리뷰는 없느냐는 지적이셨죠.

순화동 편지

적절하고 타당한 말씀이라고 맞장구를 쳤지만, 한국 사회가 건축을 대하는 태도나 시각이 변하기 전까지는 일간지의 건축 리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건축과 건설을 혼동하고, 집을 이윤을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이 땅 현실의 한계가 빤하기 때문이지요.

한국 사람들은 이제 동네에 사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 이름 속에 살고 있지 않나요? 자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한낱 어느 지역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집이 애물이자 괴물이 된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건축 비평을 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지요.

이럴 때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건축가 승효상씨가 들려준 이른바 ‘건축가의 오래된 농담’입니다. 건축가라는 직업이 매춘부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는 몇 가지 이유에 관한 것이었지요.

첫째는 건축 설계라는 것이 손님을 받아야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거지요. 화가나 조각가는 꼭 주문이 없더라도 제 작품을 할 수 있지만 건축은 땅 임자가 나서고 건축비가 나와야 가능하다는 겁니다.

둘째는 밤에 주로 일을 한다는 공통점입니다. 밤새우기를 밥 먹듯 하는 건축가의 작업 특성을 빗댄 거지요. 셋째는 종이를 많이 쓴다는 겁니다. 지금이야 컴퓨터 설계도 많이 하지만 여전히 손작업을 고집하는 많은 건축가에게 건축은 종이 잡아먹기 놀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중앙SUNDAY 매거진은 창간 때부터 독자에게 건축 리뷰를 읽는 즐거움을 드리는 신문이 되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는 명언을 되새김질하면서요.

2007년 10월 28일자에 ‘세계로 가는 한국 건축-프랑크푸르트 한국현대건축전’을 다룬 데 이어 다시 서구 건축의 본바닥으로 가는 ‘피렌체 한국현대건축전-S(e)OUL SCAPE’를 리뷰합니다. 건축에 대한 이 땅 사람들의 몰이해로 서걱거리는 가슴을 안은 채 외롭고 섭섭했을 한국 건축가의 마음이 조금쯤 눅여졌기를 바라면서…. 정재숙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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