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편집하는 건축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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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07면

조성룡씨는 끈질기게 ‘풍경’이라는 화두에 매달리고 있다. 집이 모여 거리를 이루고, 그 거리가 엮여 동네와 도시를 이루기에 그 하나하나의 단위, 즉 건축의 집합을 탐색하는 일을 궁금해하고 즐긴다.

조성룡의 한강 선유도공원

건축 공간을 배열해 풍경을 엮어가는 자신의 작업 스타일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계단실 자체가 마치 앞길의 연장처럼 되어 있고, 이 연장된 길을 오르내리면서 만나는 콩자갈 박힌 마당에 낙엽이 떨어지고, 바람 스치는 소리, 비 뿌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즐기고 싶고, 경사진 유리벽면을 타고 내리는 빗줄기를 느끼고 싶었다.”

그는 자연을 누리며 삶을 성찰할 수 있는 풍경을 채집해 편집하는 건축가인 셈이다.
‘선유도공원’은 도시의 여백공간으로 오랫동안 버려진 땅을 다시 시민의 곁으로 ‘되돌려놓은 풍경’이다. 선유도는 한강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예전에 여러 개의 콘크리트 침전지·집수지 등이 있었던 정수장.

제 기능을 다한 이곳을 테마 정원과 전시·교육공간을 갖춘 너른 녹지공원으로 재정비하는 일을 맡은 건축가는 부수고 새로 짓기보다 잊혀진 풍경 되찾기에 나섰다. 나날의 흔적, 공동체의 역사를 천천히 음미하고 수집해 ‘기억의 풍경’으로 만들어 내놓는 그의 솜씨는 인공의 손길보다는 자연의 숨결 같은 잔잔한 맛을 낸다.

건축이 요란 벅적한 패션이나 브랜드로 군림하는 이 시대에 ‘풍경 드러내기’로 우리 마음을 담담하게 해주는 조성룡의 건축은 달고 시원한 샘물처럼 다가온다.


1944년생. 인하공대와 동대학원 건축과를 나와 우일건축연구소를 거쳤다. 1975년 우원건축을 설립한 뒤 83년 서울 아시안게임 선수촌과 아시안게임 기념 공원 설계에 당선됐다.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사무국장과 서울건축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건축과 석좌교수, ‘ubac/ 조성룡연구소’ 대표로 일한다. 의재미술관(2001), 선유도공원(2002), 서울올림픽미술관(2004) 등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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