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海外두뇌위한 교민정책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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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은 누구일까.세계무역기구(WTO)의장? 요즘 클린턴 대통령을 납작하게 만들고 있는 깅리치 하원의장? 천만의 말씀이다.정답은 재미 바이올리니스트 金지연이다.왜냐하면 金지연이 가장 강한 나라 미국의 백악관을 한바탕 들었다놓았기 때문이다.
해마다 백악관에서는 거장들을 불러 음악회를 연다.金양은 지난연말 이 귀한 자리에 초대된 첫번째 연주자였다.대통령의 인사말이 끝나자 곧바로 金양이 연주를 시작할 참이었다.그러나 金양은대통령의 포디움(연단)이 걸리적 거리자 『이것 좀 치워 줄수 없느냐』고 거침 없이 말했다.작은 아가씨의 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맨 앞줄의 대통령과 부통령이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대통령전용 연설대는 결국 앨 고어 부통령의 손에 번쩍 들려 옆으로 비켜났다.박수와 웃음이 방 안에 활짝 피었다.
해외에 살며 새해를 맞은 동포수는 5백만명에 이른다.부산의 인구와 맞먹는 대식구다.하지만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교포수난도 끊이지 않는다.일본 효고(兵庫)縣 남부대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동포수는 1백명에 가깝다.지진이건 민족폭동이건화교근본주의자의 테러건 해외동포가 다치지 않는 사건은 드물다.
교포수난의 세계화다.
하지만 해외동포의 우수성과 끈질긴 삶의 모습이 곳곳에서 번뜩인다.세계화를 위해 뛰어야할 우리에게는 이미 오른팔 하나를 지구촌에 뻗어 놓은 거나 진배없다.돈과 기술은 눈깜짝할 새 국경을 넘을 수 있어도 두뇌의 이동은 그리 쉽지 않다 .덩샤오핑(鄧小平)이 낙후한 중국을 시장경제로 바꾸려 결심했을 때 조선족들에게 한 말이 있다.『당신네들은 미국에 성공한 동포들이 있지않소.』이래서 조선족에게 내린 선물이 여권이었다.해외여행을 엄두도 못낼 때 맨먼저 미국을 찾은 것은 한(漢)족이 아니라 한(韓)족이었다.
그러나 이민객의 천국이던 미국이 반(反)이민 빗장을 걸고 있다.「주민발의 187」이 캘리포니아에서 통과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설움받고 있는 한인 불법체류자는 20만명-.
남에게 설움주기는 우리도 매한가지다.8만명이 넘는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이 한국에서 인권침해다 노동착취다 하여 꿈이 한(恨)으로 변하고 있다니 역설적이다.집안에 든 손님에게 야박하고 집나간 동포는 이국땅에서 구박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국내나 해외나 산업구조의 조정이 얼마나 절박한가를 일깨워 준다.
해외의 두뇌파워를 연계할 교민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세계의3대교포세력은 화교,유대인,그리고 한민족이다.차이가 있다면 화교와 유대인에게는 헌법이 참정권까지 인정하는 너그러운 조국의 품이 있다.아랍과 전쟁이 터지자 하루만에 이스라 엘을 위해 2억달러의 전비가 걷힌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민족보다 중요한 동맹은 없다』와『교포의 현지화가 조국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헷갈리는 수사(修辭)뿐 우리의 교민정책은 빈껍데기 아닌가.교민정책이 없다고 질책하면 교민청을 만들어 교포를「관리」하려는 관료적 발상이 고작이었다.교포는 분열과 공작의대상이었지 이해와 지원의 손길은 저만치였다.그래서 기민(棄民)정책이었다.하기야 우리 이민사는 하와이 노예이민과 북간도 기아유민으로부터 펼쳐진다지만 잘 살게 된 뒤에 기아(棄兒)이민- 유럽과 북미에 입양된「버린자식」이 20만명이나 된다.이들이 성년으로 자랐다.하지만 조국은 그들을 버렸어도 그들은 조국을 잊지 못한다.
북한핵의 뒷전엔 연 8억달러가 넘는 오사카 뒷골목상인들의 피어린 성금 파이프라인이 있지 않았던가.재미교포의 본국(남한)송금액은 한해 25억달러로 집계되고 있다.그보다 값진 것은 2세들의 성장이다.졸업철이 되면 한인 벨리딕토리안(졸 업식 답사자)이 쏟아진다.아르헨티나에서는 갓이민온 한인학생이 그 나라 국어(스페인어)대회에서 장원을 했다고 현지언론이 화제를 삼는다.
지난주 뉴욕타임스紙는 교통사고로 숨진 교포여학생이 웨스팅하우스 과학상에 입상한「사후의 영광」을 머릿기사로 다뤘다.학생들의노벨상이라는 웨스팅하우스상에 교포학생들이 해마다 입상하는 것을보면 과학두뇌를 보는듯 하다.이 전문인력과 과 학두뇌는 두뇌산업의 꿈나무다.지구촌에 흩어진 구슬들을 두뇌망(global web)으로 엮어 민족의 저력에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은 전략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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