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차 번호 단속 야만의 시대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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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11일 대한상공회의소 회관에서 열린 ‘전국상의 회장단 신년 인사회’에 참석, “나는 검토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지는 않겠다”며 경제 살리기에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 당선인은 “태안 유류 사고 현장에 세계 자원봉사 사상 최대의 인원이 간 것을 보면 한국 경제를 살리지 못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대기업·중소기업인 400명이 참석했다.

이 당선인은 관광적자 개선 대책과 관련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골프 치러 오는 사람보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골프 치러 가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고 지적하고 “하지만 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분들을 세무사찰할 수 없지 않나”라고 말해 좌중에서 폭소가 터졌다. 그는 이어 “골프장의 자동차 번호를 단속하는 ‘야만의 시대’도 살았지만 그렇다고 골프를 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칠 사람은 차를 바꿔 타고, 남의 이름으로 다 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또 “은행장 간담회 때 오래된 외국인 행장은 나와의 대화에서 눈치를 보느라 조심하는데 2개월 된 외국인 행장은 겁도 없이 막 말하더라. 아직 한국화가 덜 된 것 같았다”고 뼈 있는 농담을 했다. 이는 한국에서 사업을 할 때 얼마나 정권의 눈치를 봤는지 간접적으로 지적한 말이다.

이 당선인은 또 정부부처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한국 사람은 이 부처, 저 부처를 찾아다니는 일을 그러려니 하지만 외국 사람은 아예 안 온다”고도 말했다.

한편 이날 진행자가 건의사항을 듣겠다면서 헤드 테이블의 부산시 상의회장 등과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에게만 기회를 주자 뒤쪽 자리에서는 “우리에게도 발언권을 달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그런데도 진행자가 질의시간을 마감하려고 하자 뒷자리에 앉았던 박수복 대륙금속 대표가 “이 말씀만은 꼭 드리라는 부탁을 받고 왔다”면서 발언대로 나왔다.

그를 제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당선인은 그의 말도 들어보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마이크를 잡은 박 대표는 “은행들이 일 잘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에 금리를 1%씩 올리고 원금을 갚으라는 독촉까지 한다”면서 대책을 호소했다.

이 당선인은 기업인들의 건의사항에 일괄적으로 답변하면서 박 대표에게는 “나도 기업을 해봤지만 어려울 때 은행이 필요한 것인데 기업이 잘될 때는 돈을 갖다 쓰라고 하면서 정작 필요할 때는 돈을 걷어가 버린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어 “과거와 같은 ‘금융기관’이 아니라 산업으로서의 ‘금융업체’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기업인들의 질문과 이 당선인의 답변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당초 한 시간 정도로 예상됐던 행사 진행시간은 30분 이상 연장됐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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