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읽기] 나눔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대량실업 해결할 ‘구원 투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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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의 『Giving』(물푸레)은 나눔에 관한 백과사전이다. 나눔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활약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읽는 이의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사례를 몇 가지 꼽아보자면 이렇다.

폴 파머 박사는 우리로 치자면 ‘인간극장’에 나올만한 인물이다. 어린 시절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났다. 얼마나 어려웠던지 트레일러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 안에서 가족이 살았다. 그런데도 하버드 의대를 나왔다. 부와 명성을 두루 이룰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넉 달 동안 한 여성병원에 근무하며 생활비를 벌고, 나머지 시간에는 아이티에 있는 장미 라장텐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쉐리 샐츠버·그마크 그래쇼 부부는 가까운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러 짐바브웨로 여행한 적이 있다. 우연히 학교에 들렀다가 충격을 받았다. 교과서는 물론이고 기본 학용품도 없는 학생이 많았다. 도서관 서가는 비어 있었고, 과학실험기구는 바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부부는 뉴욕으로 돌아오자마자 ‘미국-아프리카 아동연대’라는 비정부단체를 세웠다. 2년간 활동한 결과, 미국의 35개 학교가 짐바브웨 학교와 자매결연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현물을 지원했다. 현금지원을 위해 따로 기금도 모았다.

헤퍼 인터내셔널은 전세계 가난한 사람에게 가축을 지원해 기아문제를 해결하려는 기구다. 기증된 소나 양 따위는 우유와 달걀, 양털, 고기를 제공한다. 먹을 거리와 팔 거리가 동시에 생겨나는 셈이다. 이 단체는 나눔의 고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장치를 마련했다. 기증받은 가축의 맏배를 어려운 이웃에게 주도록 한 것이다. 헤퍼가 직접 지원한 사람은 대략 1000만 명인데, 이 제도 덕분에 전체 수혜자는 4500만 명이 됐다.

『행복한 기부』(토마스 람게, 풀빛)는 독일판 『Giving』이다. 독일에서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나눔의 삶이 감동적으로 소개된다. 이 책의 미덕은 사례를 열거하는 대신 나눔에 대한 이론적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지은이는 대량실업, 병든 사회보장제도, 파산지경에 이른 국가재정 같은 문제를 누가 해결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묻는다. 맹목적으로 시장을 신뢰하는 신자유주의자나, 오로지 국가에 기대려는 국가주의자들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본다. 시민사회가 새로운 ‘구원투수’라는 것이다.

국가라는 ‘보모’와 결별한다는 것은, 시민들이 타인을 위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시민들의 지속적 참여를 끌어내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지은이는 합리적 이기주의나 상호적 이타주의를 내세운다. 장기적으로 볼 적에 이타적 행위가 이기적 목적도 만족시켜준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기부행위에 세금혜택을 부여하는 것도 중요한 자극제가 되며, 부유한 ‘현명한 이기주의자’들은 빈곤이 결국 자신들에게도 해가 된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눔의 정신이 필요하다. “누구나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기 때문에 위대해질 수 있다.” 마틴 루터 킹이 남긴 말이란다.

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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