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 속 대인의 풍모 보여주셨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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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저는 선생님의 부음을 듣고 우리 사회가 또 한 분의 원로를 잃었다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선생님과 함께했던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 이제는 한낱 추억 속의 시간으로 남게 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더구나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시며 함경북도 명천의 고향 땅을 그토록 밟아보기를 원하셨지만 그리하지 못하고 떠나시는 선생님의 아픈 마음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선생님과 여러 인연으로 만나면서 선생님의 인생의 역정을 듣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삶의 모습 속에 있는 대인의 풍모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한 가지 일이라도 제대로 해내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일들을 다 이루어내셨습니다.

 한양대학교의 총장으로서 대학을 경영하고 병원을 운영하는 일만 해도 몸이 모자랄 지경일 터인데 부속 중고등학교, 초등학교까지 설립하셨을 뿐 아니라 대한일보와 기독교신문의 발행인, 대한체육연맹 회장, 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 회장 등을 맡으셔서 참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많은 일들을 모두 해내셨습니다.

 저는 언젠가 선생님의 저서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공감했던 일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공적인 생활을 바르게 하려면 사적인 인정은 희생시켜야 한다. 물론 그 희생은 결국 국가 사회를 바르게 하는 데 보탬이 되는 것이므로 소득없는 희생은 아니다”라고 하셨지요. 선생님께서 그 많은 일들을 해내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기 희생의 정신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과 역경을 겪으시면서도 그 꿋꿋함과 대인다운 풍모를 결코 잃지 않으셨습니다. 이를 보며 그릇이 작은 우리는 선생님의 그릇이 얼마나 큰 그릇이었는지 그저 짐작이나 할 따름입니다.

저는 늘 선생님의 이러한 대인다운 풍모에 감동을 하였지만 저의 가슴을 더 울린 것은 선생님이 품고 계신 크나큰 사랑의 실천 정신이었습니다. 학교를 설립할 때부터 품고 계시던 ‘사랑의 실천’ 정신을 실로 이 땅에 실현하다 가신 선생님이시기에 선생님을 떠나 보내는 우리의 가슴이 이렇게 더 아픈 것인지 모릅니다.

이제 저희들은 선생님을 떠나보냅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큰 대인으로, 사랑의 실천자로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도 선생님이 품으셨던 그 큰 사랑이 더 멀리 퍼질 것을 믿으며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올립니다. 부디 편히 쉬소서.

 권이혁(전 서울대총장, 문교부·보건사회부·환경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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