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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두뇌’ 칼 로브의 뉴햄프셔 표심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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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힐러리는 맥주를 마시는 층(저소득층)에서 이겼고, 오바마는 포도주를 마시는 층(고소득층)에서 이겼다. 그런데 민주당에는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더 많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던 선거전략가 칼 로브(사진) 전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10일 민주당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을 물리친 이유 중 하나로 이런 주장을 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힐러리는 왜 이겼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서다. 그는 2000년과 2004년 대선 때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존 케리 상원의원은 네거티브 전략을 전개한 로브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그때부터 ‘부시의 두뇌’라는 별명을 얻은 로브는 힐러리의 승리 요인을 네 가지로 분석했다.

 먼저, 민주당 텃밭인 저소득층 공략이 주효했다. 로브는 “힐러리는 노동계급 거주 지역과 시골지역에서 승리했고, 오바마는 대학가와 고급 주택가에서 이겼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유권자가 많은 저소득층의 지지를 얻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힐러리 캠프가 공략 목표를 영리하게 잘 선정했다. 민주당원인 여성, 그중 독신 여성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고 덧붙였다.

 둘째, 인간적 면모를 보여줬다. 로브는 힐러리가 7일 유권자와의 대화에서 눈물을 보인 것을 거론하며 “그의 감성적 답변은 따뜻했고, 강력했다. 가끔 꾸며내고 계산적인 힐러리의 모습과 달리 이건 진짜였다. 인간적인 데다 호소력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오바마는 아이오와주에서 승리한 직후인 5일 뉴햄프셔주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불필요한 말을 했다. 사회자가 힐러리에게 “유권자가 오바마를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힐러리는 “그게 마음 아프지만 계속 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때 오바마가 “힐러리, 당신도 충분히 좋아할 만한 사람”이라고 거들었다. 그런데 이 말은 은연중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어서 유권자들에게 거부감을 줬다는 것이다.

 셋째, 국정 경험이 유권자들에게 먹혔다. 로브는 “힐러리는 경험이 없고, 실적이 없는 오바마에 대해 ‘그가 과연 백악관 주인으로 적합하냐’는 문제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힐러리의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라크전에 대한 오바마의 서로 다른 발언들을 지적하면서 아픈 곳을 건드리기도 했다”며 힐러리 측의 공격적 태도가 통했다고 분석했다.

 넷째, 오바마 연설에 구체성이 없었다. 로브는 “오바마 연설이 웅변적이고 감동적이지만, 공기처럼 가벼워 구체적인 대안을 찾는 뉴햄프셔주 유권자들에게는 알맹이가 없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오바마는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 주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프롬프터(연설 자막이 나오는 기계)를 쓰는 후보”라며 “그런 연설은 청중과 유리될 뿐 아니라 힐러리처럼 계산적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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