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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권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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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2005년 아카데미상 작품상은 복싱을 소재로 한 ‘밀리언달러 베이비’에 돌아갔다. 이 영화 속의 여성 복서 매기 피츠제럴드(힐러리 스왱크 역)와 고 최요삼 선수는 닮은 데가 많다. 30대의 나이에 독신의 외로운 삶을 살다 간 점, 링에서 머리를 맞고 쓰러져 뇌출혈을 일으킨 것…. 의학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최 선수(뇌사)가 매기(식물인간)보다 더 절망적인 상태였다는 것이다.

복싱은 극단의 양면성을 가진 스포츠다. 신체를 단련하고 젊은이에게 꿈을 준다는 것이 밝은 면이다. 요즘엔 다이어트에 좋은 운동으로도 통한다. 그러나 자신이나 상대에게 부상을 안기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는 어두운 면을 감출 수 없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격투 스포츠 저널’에 실린 연구논문에 따르면 1890년 이후 전 세계에서 권투 경기로 죽은 사람은 1355명이나 된다. 보호 조처가 부족했던 예전뿐 아니라 1990년대에 78명, 2000년 이후에도 68명 이상이 숨졌다. 두 명의 여성 복서도 포함돼 있다. 사망이 모두 패전의 결과였던 것도 아니었다. 전체 사망자의 5%는 최 선수처럼 경기에서 이기거나 비겼다. 체급도 가리지 않았다. 전체 복싱 사망자 중 라이트급 선수의 비율은 헤비급 선수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사망 원인은 대부분(80%)이 머리·목·뇌의 손상. 다음은 심장사(12%)였다.

최 선수의 직접적인 사인은 뇌 경막하 혈종이다. 얼굴·머리를 주로 가격하는 복싱의 특성상 확률이 가장 높은 부상이다. 95년 일본 지케이 의대 신경외과 사와우치 교수팀에 따르면 복서가 당하는 뇌 손상의 75%가 뇌 경막하 출혈이다. 전문의들은 복싱으로 인한 사망을 예방하려면 라운드 수를 줄이고 경기 전은 물론 경기 후에도 선수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프로 복서도 헤드기어를 착용하자는 의견이 있지만 이에 의문을 표시하는 이도 많다. 머리 한쪽을 맞으면 뇌가 출렁거리면서 그 충격이 반대쪽 뇌까지 전달되는 반충좌상(反衝挫傷)을 해소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라운드 수 줄이기도 충분치는 않다. 3라운드를 뛰는 아마추어 경기에서도 비극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험한 게 어디 권투뿐이랴. 평균수명이란 삶의 라운드 수는 속절없이 늘어나지만 자신 있게 모든 준비가 돼 있다고 할 만한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항상 자신을 보호하라!”라는 프랭키(매기의 트레이너)의 충고를, 복서는 물론 우리 모두 새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