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장산책] 단돈 만원이면 홍콩이 '한 아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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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으로 쇼핑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다면, 먼저 어떤 종류의 쇼핑을 할지부터 정해야 한다. “나는야 쇼퍼홀릭”을 외치는 이들이 찾는 패션·생활용품 쇼핑가와 아기자기한 재미를 즐길 수 있는 재래시장은 아예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홍콩 재래시장 탐험은 깍쟁이 명품 쇼핑족보다는 구수한 된장냄새 나는 여행족에게 어울린다. 시장을 돌다 우연히 만나게 되는 러닝셔츠 차림 할아버지의 환한 미소, 그들이 만들어 내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우리 돈으로 약 1200원, 10홍콩달러만 있으면 ‘진짜 홍콩 시장’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글·사진=여행작가 채지형 www.traveldesigner.co.kr

대표 재래시장, 레이디스 마켓

 홍콩 재래시장의 대표주자는 역시 레이디스 마켓. 주로 여성용품을 판다고 붙은 이름이다. 그렇다고 꼭 여성용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원색의 중국 전통의상부터 가슴팍에 홍콩 풍경이 커다랗게 박혀 있는 관광객용 티셔츠, 동남아풍 비치 원피스 등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쌓여 있다.

 

늘 분주한 레이디스 마켓. 잠시 둘러 보는 것 만으로도 활력이 솟는다.

레이디스 마켓의 장점은 무엇보다 다양한 상품과 저렴한 가격. 우리 돈으로 1만원 정도면 선물을 한 아름 살 수 있다. 아이팟(iPod) 케이스는 단돈 2000원이면 예쁜 캐릭터가 그려진 것부터 투명한 것까지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다.

 ‘싸구려 시장’이라고 무조건 폄하하진 말자. 명품 쇼핑몰처럼 세련된 감각을 기대하긴 힘들지만, 그저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활력과 즐거움이 솟는다. 힘차게 ‘골라, 골라’를 외치는 목소리로 가득한 남대문시장을 생각해 보라. 레이디스 마켓 사람들의 부지런한 일상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부근에 있는 금붕어 시장과 스포츠 마켓도 남다른 재미를 주는 곳이다. 금붕어 시장에서는 말 그대로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을 판다. 물고기를 한 마리씩 조그만 비닐봉지에 담아 파는 것이 특징. 벽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물고기가 든 봉지를 보고 있노라면, 다만 한 마리라도 얼른 구출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스포츠 마켓은 여행자보다 현지인들에게 인기 있는 시장이다. 각종 스포츠 용품과 운동화를 파는데, 흔히 ‘운동화 거리’라고도 불린다. 눈썰미 좋은 사람은 한자 수를 놓은 멋진 운동화를 건지기도 한다. 시장 구경에 지쳤다면, 운동화 거리에서 편한 운동화나 슬리퍼를 사 신고 여행을 계속 하는 것도 좋겠다.

 지하철 프린스 에드워드 역 부근에는 꽃 시장이 있다. 홍콩까지 가서 웬 꽃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곳 꽃 시장은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특이한 품종이 많은 데다 소박하게 흰 종이로 둘둘 말아놓은 꽃다발이 더없이 깜찍하다. 이러 저리 꽃구경을 하다보면 시간을 잊기 십상이다. 주의해야 할 점 하나. 예쁘다고 사진을 마구 찍다간 주인에게 한 소리 들을 수도 있다. 눈치껏 몰래 찍거나 미리 양해를 구하는 편이 낫다.

 
음식 냄새 구수한 타이오 어시장

 

한국에서 보기 힘든 품종들을 만날 수 있는 지하철 프린스 에드워드 역 부근 꽃 시장.

홍콩의 재래시장 중 서양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바로 옥 시장이다. 10홍콩달러의 가치가 이곳만큼 빛나는 곳도 드물다. 10홍콩달러면 옥 팔지를 3개나 손에 넣을 수 있다. 물론 비싼 제품도 있긴 하지만, 호기심으로 사는 기념품이라면 저렴한 제품도 그리 나쁘지 않다.

 오래된 홍콩 냄새가 그립다면 캣 스트리트로 가보자. 값싼 물건이 대부분이라 ‘골동품’이라고 부르기엔 좀 거한 느낌이지만, 옛 정취에 푹 빠질 수 있다. 어여쁜 아가씨들이 그려진 수 십 년 전 홍콩 달력에 마오쩌둥이 그려진 시계, 옛날 돈…. 심지어 여행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도 10여 년 지난 것을 판다. 물건도 물건이지만 캣 스트리트의 진짜 미덕은 뒷골목에 있다. 한 블록만 뒤로 돌아가도 마작을 즐기는 할아버지, 그 옆에서 국수를 마는 할머니 같은 ‘보통’ 홍콩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볼 곳은 란타우 섬에 있는 타이오 마켓. 각종 건어물과 생선을 파는 작고 소박한 어시장이다. 대나무로 만든 수상가옥 등 홍콩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외지인보다 홍콩 사람들에게 더 인기가 있는 곳이다.

 타이오 마켓에는 어시장 특유의 비릿한 냄새와 함께 각종 길거리 음식이 만들어 내는 구수한 냄새가 늘 감돈다. 이곳에는 유명한 ‘스타’가 한 명 있다. 바로 매운 소스를 묻힌 오징어를 숯불에 구워 파는 할아버지. 봉지를 펼 때도, 오징어를 구울 때도 쇼맨십이 대단하다. 할아버지의 과장된 몸짓에 여행자들은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할아버지 가게 앞에 길게 줄을 서는 여행자들은 오징어보다 할아버지의 쇼에 더 관심이 있는 듯 보인다. 타이오 마켓 할아버지 표 오징어 역시 10홍콩달러.

 홍콩 재래시장 이야깃거리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어쩌면 홍콩 자체가 흥미진진한 시장인지도 모르겠다.

■가는 법=홍콩으로 가는 항공편은 다양하다. 캐세이퍼시픽항공과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이 직항을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약 4시간. 항공과 호텔을 연계하는 에어텔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다. 캐세이퍼시픽 왕복 항공권과 호텔을 연계한 홍콩 수퍼시티 패키지(www.cathaypacific.com/kr) 등이 대표적. 1홍콩달러(HKD)는 약 120원. 시차는 홍콩이 서울보다 한 시간 느리다.

■여행팁

타이오마켓의 양념오징어 굽는 할아버지.

1. 쇼핑으로 발을 혹사시켰다면 저녁에 꼭 발 마사지를 받자. 우리 돈 1만원 수준에서 훌륭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2. 란콰이 펑이나 소호의 펍에서 한 잔을 즐기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 작은 팁. 몸을 생각한다면 제비집이나 거북이 젤리 요리를 추천한다.

3. 재래시장에서는 무조건 흥정을 해야 한다. 10~20% 깎는 것은 기본.

4. 조용하고 여유 있는 쇼핑을 원한다면 스탠리 마켓을 추천한다. 재래시장이지만 유럽풍이다.

5. 명품이나 최신 유행 패션에 관심 있다면 재래시장보다 소호 거리나 DFS갤러리아 등 유명 쇼핑몰, 아웃렛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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