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2030’ 진짜 공상소설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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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비전 2030은 총 1160조원(불변가격 기준)이 소요되는 프로젝트입니다. 참여정부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 막대한 자금을 어디서 조달한다는 것입니까? 이리 재고 저리 재봐도 도저히 견적이 안 나옵니다. 참여정부 관계자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이 정책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공상소설’ 같은 정책이지요.”

▶2006년 8월에 열린 비전 2030 보고회의.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2006년 8월 참여정부가 발표한 비전 2030이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는 시대 상황에 맞는 새로운 정책으로 국가 미래 발전전략을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전 2030’은 우리나라 경제·사회 제도 등 전반적인 분야를 혁신해 2030년까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4만9000달러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 삶의 질 수준을 세계 41위에서 10위까지 끌어올리고, GDP 대비 복지지출 규모를 2030년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수준(21%)까지 높이겠다는 내용으로 50가지 정책과제를 담고 있다.

이 정책은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것으로 참여정부의 분배정책을 망라한 계획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노 대통령은 2005년 7월 ‘비전 2030 수립을 위한 민간 작업단’을 발족시켰다. 여기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세연구원, 산업연구원(KIET), 노동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 11개 국책연구기관이 참여했다. 국가 싱크탱크가 총출동한 것이다.

‘비전 2030’을 실현하는 데 소요되는 돈은 자그마치 1100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 돈을 어떠한 방법으로 충당할지 구체적으로 계획이 나오지 않았다. 노 대통령도 비전 2030 보고회의에서 “2010년까지는 국가 재정으로 운영이 가능하지만, 2011년 이후 추가 재원조달 방안은 국민과 협의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이는 일정 부분 국민의 수혈이 불가피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1100조원을 모두 조세로 충당한다면 국민 1인당 연평균 33만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2006년 1인당 평균 세부담액(345만원)의 10% 수준이다.

대선 기간 동안 이명박 캠프에서 경제정책팀 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재정 담당자는 “약자들의 복지 개선을 위해 세금을 더 걷는다는 것은 국민의 반발만 살 것”이라며 “명확한 방법 없이 서민들의 삶의 질 높이기만 거론한다는 것은 국민을 농락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원윤희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 당선인은 평소 국가 미래전략과 사회복지 분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분명 자신만의 정책과 전략이 있을 것”이라며 “참여정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경제성장률 7% 성장 공약과 국가 예산 20조원 절감 등의 방법으로 재정 마련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원 교수는 대선 전까지 이명박 캠프에서 조세분야 정책을 주로 담당했다.

참여정부 ‘비전 2030’ 수립 때 참여했던 우천식 KDI 선임연구위원은 “이 정책의 핵심은 지속 가능한 국가 성장동력을 찾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다. 새 정부에서 세부 정책 과제를 전부 다 검토할지라도 비전 2030의 핵심과 비슷한 방향으로 국가 미래발전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비전 2030’의 골간은 유지될 것이란 설명이다.

‘비전 2030’은 국가재정운용계획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국가재정운용계획이란 정부가 향후 펼칠 정책을 전망하고 이에 들어가는 재정운용계획을 미리 세워놓는 제도다. 참여정부가 발표한 2007~201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는 ‘비전 2030’을 실행한다는 전제 아래, 각종 예산 쓰임이 나와 있다.

이 예산안에는 경제분야 지출 규모가 현재보다 절반가량 줄어드는 대신 복지분야 지출액은 1.5배가량 늘었다. 이명박 정부가 ‘비전 2030’ 세부 정책 과제에 칼을 댄다면, 국가재정운용계획도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비전 2030과 함께 도마에 오른 중장기 정책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에너지비전 2030’이다. 이 정책은 2006년 11월 발표된 것으로 우리나라의 영원한 해결과제인 석유 부족 문제를 높은 자주개발률과 에너지 효율 확대 등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또 2030년까지 국내 에너지 사용량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을 35%까지 낮추고 풍력, 조력, 태양에너지 등 신재생에너지의 사용을 크게 늘린다는 계획이다. 현재 2.3%에 머무르고 있는 신재생에너지의 보급률을 2030년까지 9%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를 위해 2006년 9월 자신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에너지위원회’를 구성했다. 국가에너지위원회 조직은 2006년 3월 공포된 에너지기본법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초기부터 현재까지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황주호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노 대통령은 취임 순간부터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높이고 신재생에너지 사용 확대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황 교수는 “이 정책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에너지 빈곤층을 없애자는 것’이다. 에너지 빈곤층이란 돈이 없어서 가스와 전기를 못 쓰는 이들을 말한다. 여기에서도 노 대통령의 분배정책 추진 의지를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에너지비전 2030’에 대해서도 대통령직인수위 측의 반응은 냉담하다. 인수위 기후변화·에너지대책T/F 허증수 팀장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직 아무것도 검토된 사항이 없다”며 “현재 확정된 에너지 관련 정책은 이 당선인이 발표했던 공약이 전부”라고 말했다.

현재 이 당선인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에너지 정책은 ‘안보·환경·산업·기술정책과의 연계강화 등 국가 에너지 경쟁력 제고’와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투자 및 해외유전개발 확대’ 등이다.

큰 틀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 관련 정책이 참여정부의 ‘에너지비전 2030’과 어느 정도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크게 달라질 것으로 인수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의 ‘에너지 빈곤층 감소’ 정책 등은 다음 과제로 넘어가거나 중심에서 비껴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당선인은 참여정부가 제시했던 ‘신성장동력 정책’을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대통령직인수위 경제2분과위 최경환 간사는 “신성장동력 산업은 기존 정부의 정책을 수렴해 새로운 방향을 잡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직인수위 과학비즈니스벨트T/F 민동필 팀장은 “참여정부의 몇몇 정책은 계속 끌어안고 나가야 할 부분이 있다”며 “수용 여부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는 2003년 8월 지능형 로봇, 미래형 자동차, 차세대 전지 등 10대 분야를 신성장동력으로 선정했다. 이후 2005년부터 차세대반도체 기술과 지능형 로봇 ‘휴보’ 개발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 밖에 중앙정부 각 부처에서 내놓은 중장기 정책들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004년부터 추진된 교육인적자원부의 ‘교육개혁 2030’은 교육부 존폐 논란으로 언급조차 안 되고 있다.

또 국방부가 2006년 발표한 ‘국방개혁 2020’도 대부분 원점에서 재검토 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동맹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되지 않았고, 자주국방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게 수정 이유다. 나머지 재경부, 건교부 등의 중장기 정책들도 이명박 정부에서 대폭 손질될 것이란 분석이다.

최남영 기자 hinew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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