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포커스] 출자총액제한 제도 폐지 다시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기업의 출자를 제한하는 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집단소송제 등을 통한 견제장치와 투명성이 보장되면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다."(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18일 관훈클럽 토론서)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만 보장되면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과감하게 풀어나가겠다."(이헌재 경제부총리 18일 국회 답변서)

대기업그룹(재벌)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폐지 여부가 뜨거운 감자로 다시 부상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 취임 이후 정부의 경제정책 목표가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집약되면서다. 기업들은 그동안 "투자 활성화와 고용 창출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 중 하나는 출자총액제한 제도"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을 통해 이의 폐지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그러나 주무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존속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강철규 공정위원장은 24일 "지난해 마련한 시장개혁 일정표(로드맵)에 따라 3년간 이 제도를 더 유지한 뒤,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오면 규제를 전면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높아지는 폐지 목소리=정부가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강조할수록 폐지론도 거세지고 있다.

인천대 이찬근 교수는 "출자총액규제를 지키다 보니 기업들이 내부에 자금이 쌓여도 미래의 성장산업에 마음껏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자본과의 역차별 문제도 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의 주식투자 한도는 철폐됐고, 이에 따라 적대적 기업인수.합병(M&A)도 전면 허용됐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국내 기업에 대해서만 출자가 제한돼 국내.외 자본 간 경영권 다툼이 벌어지면 국내 자본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는 최근 SK에 대한 소버린의 경영권 도전에서 잘 드러났다.

재계도 그동안 기업지배구조가 투명하지 못했고, 일부 그룹 총수들의 전횡에 문제가 있었던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그동안 결합재무제표와 사외이사제 도입 등을 통해 거의 해소됐고, 더욱이 내년부터 집단소송제까지 시행되면서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을 맞았다고 항변한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는 "집단소송제가 시행되면 출자총액제한은 자동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선 뒤 국회에서 판가름=이동규 공정위 독점국장은 "지난해 마련한 시장개혁 일정표는 관련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정부 차원에서 확정한 것"이라며 "이 골격에 변화는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공정위가 올 상반기 중 국회에 올릴 예정인 개편안은 출자총액규제 졸업기준을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의결권 승수(지배주주의 의결권÷실제 보유지분)가 2 이하인 경우 등으로 바꿨다. 지금은 결합재무제표상 부채비율 100%로 돼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우리의 기업 현실이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없앨 만큼 달라졌는지 의문"이라며 이 제도는 존속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산업분야에 대한 출자는 지금도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며 이 제도 때문에 투자를 못한다는 얘기는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는 공정위가 '규제를 위한 규제'의 함정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삼성그룹은 올해 부채비율이 100% 밑으로 내려가 출자총액제한에서 자동졸업이 가능해졌지만, 새로운 의결권 승수 규정에 묶여 계속 규제를 받게 됐다. 전경련의 양금승 사회협력실 부장은 "공정위는 과거에 기업들의 소유분산을 권장하며 출자총액제 적용의 예외를 인정하기도 했지만, 이제 와서는 소유분산이 잘 돼 의결권 승수가 높아진 기업에 불이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무튼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폐지 또는 완화 여부는 4월 총선 뒤 구성될 새 국회가 곧장 결론짓게 된다.

김광기.김영훈 기자

◆출자총액제한제도란=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순자산의 25%를 초과하여 다른 국내 회사의 주식을 취득.보유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제도. 현재 이 제도 때문에 출자를 제한받는 기업집단은 삼성, LG, SK, 현대자동차, KT, 한진, 대한주택공사, 한국토지공사, 한화, 현대중공업, 현대, 금호, 한국가스공사, 두산, 동부 등 15개 그룹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