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두 연출가 '江南 원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두 젊은 연출가가 '원정'을 떠난다. 소극장만 촘촘한 대학로를 벗어나 LG아트센터란 낯선 영토에 도전장을 던진다. 강남의 한복판, 관객은 중산층, 극장은 국내 최고급이다. LG아트센터로서도 창작극을 올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시도다.

이유가 있다. 양정웅과 이기도, 두 사람을 통해 한국 연극의 내일을 보겠다는 의도다. 양정웅은 지난해 연극'연(緣)-카르마'로 카이로국제실험연극제에서 대상을 탄 실력자다. 또 폴란드의 말타 페스티벌에도 이미 초청을 받은 상태다. 이기도 역시 2001년 백상 예술대상 신인 연출상을, 2002년 서울공연예술제에선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윤택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문학에 의존해 온 우리 연극의 기존 작업 방식과 달리, 양정웅과 이기도는 독자적인 연극성을 창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연극의 미래를 짊어진 두 사람이 강남의 대극장에서 승전보를 날릴지 기대된다. 02-2005-0114.

*** 이기도 창작극 '흉가에 볕들어라'

35세의 파릇파릇한 연출가 이기도는 주눅들지 않았다. 그는 "공연을 즐길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 창작극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그들의 편견을 깨뜨리겠다"고 장담했다.

'연극은 재미없다''창작극은 더하다'는 선입견을 '흉가에 볕들어라'(4월 3~11일)란 토종 연극으로 "꽝!"하고 내리치겠다는 포부였다.

한때의 치기가 아니었다. 서울예대 연극과 재학시절, 그는 매일 밤 한편씩 시를 썼다. 자취방은 자작시를 타이핑한 A4용지로 도배돼 있었다.

'말의 맛'을 터득하기 위해 황지우.기형도.장정일 등의 시집을 수도 없이 읽었다.

그는 "연극배우와 작가는 모국어 교사가 돼야 한다"며 "무대 위에서 말이 숨쉴 때 연극도 숨을 쉰다"고 말했다. 대사가 피부에 착착 감겨야만 관객의 가슴을 찌를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의 작품에는 무수한 '칼날'이 숨어 있다. 그는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자세히 보라"며 "여기저기 장치된 웃음들이 마지막에는 일제히 비극을 향해 달려간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도 꼭 닮았다. 정신없이 웃다보면 어느 새 결말이 뒤통수를 친다. 그제서야 관객은 치밀한 구성과 연출력에 "오~와! "하고 탄성을 내지른다. "아파야만 글을 쓴다"는 이해제 작가의 희곡도 큰 힘을 발휘한다.

이기도는 타협을 모른다. "극단 전용 극장을 안 가질 계획"이라고 못 박았다.

"레퍼토리를 반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창작극을 올리려면 '위태로운 방랑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스팔트길 대신 가시밭길을 택한 그는 갈 길을 아는 '구도자'였다.

*** 양정웅 '맥베드' 재해석한 '환'

양정웅(36)은 '스펀지'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은 죄다 빨아들인다. 동양적이든, 서양적이든, 현대적이든, 전통적이든 양식을 가리지 않는다.

연극'환(幻)'(3월 19~26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원작이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다. 철저히 한국적이고, 동양적이면서 또 서양적이다.

배경이 있다. 양정웅은 1994년 스페인에 적을 둔 '라센칸'이란 다국적 극단에 들어갔다. 연출가는 일본인이었고, 배우는 독일.인도.영국.스페인 등 여러 나라 출신이다. 그는 "그곳에서 다양한 국적의 미학적 표현을 만났다"고 말했다. 1년 뒤에는 인도로 건너가 배우로 일했다. 그는 "'탄드라'란 인도춤을 보면서 샤머니즘적 영감이 떠올랐다"며 "이번 작품에선 무당춤을 탄드라식으로 풀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유럽의 건축물에선 무대 장치에 관한 갖가지 아이디어를 따왔다.

목표는 세계시장이다. 그는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문구를 역이용한다. 그는 "해외 무대에서 한국적 양식은 '이국적이지만 낯선 것'으로 통한다"며 "일본의 노와 가부키, 중국의 경극, 서양의 현대 미술,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등에서 가리지 않고 이미지를 흡수, 재창작하는 방식이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환'에는 이미지가 넘친다.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영웅'처럼 붉은 천과 꽃잎 등이 무대에서 휘날린다. 그는 "'환'은 이미지로 풀어낸 맥베스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작품은 한번도 끼인 적이 없는 '아비뇽 페스티벌'의 메인프로그램에도 출품을 추진 중이다.

백성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