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익 "세상에 인재가 한둘인가"·우이 "나를 깨끗하게 잊어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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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유우익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우) 우이 중국 부총리

이코노미스트 포스트 유우익은 누가 될 것인가. 유우익(57)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됐다. 자연히 향후 국정운영에 있어서도 중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유 교수는 인수위원회가 확정되기 하루 전인 지난 12월 25일 밤 이 당선인과 만나 본업인 교직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 교수를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으로 내심 점찍은 이 당선인은 “인수위에서 일해 달라. 앞으로도 계속 도와줘야지 어딜 가느냐”고 만류했지만, 유 교수는 “임명하셔도 저는 일하러 나오지 않을 테니 명단에서 빼달라”며 거절했다.

유 교수는 이 당선인이 국회의원 시절인 1994년 세운 개인 싱크탱크 국제전략연구원(GSI) 원장으로서 한반도 대운하 공약, 남해안 개발, 서해 평화지대 공약 개발에 관여했다. 또 경선 수락 연설문과 대통령 당선 기자회견문 작성에도 참여했다. 이 당선인의 재산 헌납 문제를 마지막까지 상의하기도 했다.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 거절

유 교수는 대통령 당선 후 첫 주말, 청와대 안가(安家)에 초청받은 테니스 멤버 11인에도 포함됐다. 권력의 이너서클에 머물길 거절한 유 교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밝혔다.

“나랏일을 할 사람이 어디 저뿐입니까?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제가 가장 훌륭한 사람이어서 이 당선인을 도운 것이 아니라 그와 평소의 인연이 있고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나만 그분을 도울 수 있답니까? 내가 이 당선인을 도와 정권교체를 하고 훌륭한 대통령을 뽑을 수 있었으면 그것으로 됩니다. 나는 본래 교수입니다. 일이 끝나면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대선을 준비하면서도 교수로서 강의 한 번 빠진 적 없고 박사논문 심사도 다 했습니다. 교수로서 다른 공부를 덜 하고 덜 논 것뿐이지요.”

이 당선인이 서운해 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수순이었다”며 “나도 알고, 내 직원도 알고, 당선인도 알고 있었던 일”이라고 답했다.

유 교수는 ‘포스트-유우익’에 관해 묻자 강호의 무림고수를 비유해 대답했다. “강호에 인재가 어디 한둘인가.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오는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에서 훌륭한 인재를 발탁해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길 기원했다.

유 교수는 전화 통화 내내 “물러난 사람이 어디 뉴스거리나 되느냐”면서 인터뷰를 꺼렸지만 지금까지 유 교수처럼 빈손으로 물러난 사람은 많지 않다.

이명박 당선인의 자문교수만 1000명이라는 것은 이 당선인이 각 분야의 전문가 의견을 경청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새 권력의 이너서클을 꿈꾸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일단 이너서클에 들어가면 두 손 가득 권력을 쥘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국내 공기업 사장의 출신을 보자. 이른바 ‘낙하산 인사’들이다. 공무원과 군인, 정치권 인사가 역대 사장의 80%를 넘는 반면 내부 출신은 4.7%에 불과하다. 역대 공기업 사장 301명 중 공무원 출신은 45.2%인 136명, 다음은 군 출신으로 22.9%인 69명, 정치권이 21.9%인 66명이다.

이러니 유 교수의 “공직을 맡지 않겠다”는 말이 신선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시기, 홀연히 권력을 등진 사람이 중국에도 있다. 바로 중국 우이(69) 부총리다.

올해 3월 공식 퇴임하는 우이 부총리는 지난 12월 24일 “퇴직 후 공직은 물론 어떤 민간 직책도 맡지 않을 것”이라며 “나를 깨끗하게 잊어 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중국 국제상회(상공회의소)가 제의한 중국무역촉진회 명예회장 자리마저 거절했다.

우이 부총리가 중국 여성 최초로 차기 국가 부주석이나 정치국 상무위원에 기용될 것이라는 설이 있었기에 중국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공직 재임 연령제한이 만 68세로 낮춰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 본인이 이미 결단을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우이 부총리는 2개월 전인 지난해 9월 중순 대만 투자기업과의 회의석상에서 “나는 내년에 퇴임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처럼 이렇게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 재임 동안 우이 부총리는 피곤한 일을 도맡아 해결하는 해결사였다. 그녀가 매번 출국할 때마다 당시 가장 민감한 사항에 대한 해결이라는 임무를 가지고 떠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녀는 언론매체에서 가장 많이 보도된 국무원 부총리이기도 하다.

세계 여성 TOP 10 중 2위에

그녀를 통해 미·중 간 지재권 협상의 역사를 볼 수 있다. 1991년 말 미·중 지재권 담판을 위해 미국으로 출발할 당시 중국 대표단 단장이 갑자기 병이 생겨 대외무역경제합작부 부부장이었던 우이가 단장으로 처음 참가하게 됐다.

92년 1월 17일 장장 2년 반에 걸친 미·중 지재권 협상이 타결되면서 우이 부총리가 합의서에 서명했고, 이날 홍콩 증시는 29포인트 올랐다. 10년이 흘러 2001년 11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당시 우이는 국무위원이었다. 그 후 그녀는 미·중 간, 그리고 중국과 유럽연합(EU) 간 무역마찰이 생길 때마다 앞장서 싸웠다.

그중 우이 부총리가 대외무역경제합작부장 시절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였던 칼라 힐스가 “중국은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침범했다”며 ‘좀도둑’에 비유하자 그녀가 “미국은 과거 중국의 유물을 빼앗아가지 않았느냐”며 ‘날강도’라고 맞받아친 일화는 유명하다.

여러 번의 마찰에도 미국에서는 그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지난 12월 13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3차 미·중 전략경제회의 기자회견장. 미국 폴슨 재무장관이 첫 번째로 한 말은 “나는 내 동료를 대표하여 퇴임을 앞둔 우이 부총리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녀는 중국 인민의 위대한 대표”라고 말했다.

샬린 바셰프스키 전 미국 USTR 대표는 “만약 중국의 고위관료를 통해 세계가 중국에 신뢰를 갖도록 만들고 싶다면 적임자는 바로 우이 부총리다. 중국 내에서도 그녀는 공산당과 정부를 막론하고 아주 높은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로, 국가 이익의 수호자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인정받은 우이 부총리는 지난해 10월 미국 ‘포브스’(Forbes)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 여성 10’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 이어 2위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만약 부패한 공무원이라도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알려지다시피 중국은 가장 부패한 국가 중 하나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2006년 글로벌 경제구조 정리 보고서’에서 공금횡령 등의 부패국가 순위 중 중국은 3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나는 매년 12만 위안(약 1600만원)의 연봉을 받았는데 여기 계신 여러분은 분명 나보다 수입이 많을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 중 누가 별장이 없겠습니까. 여러분 같은 분들이 먼저 청렴하면서 공공에 봉사해야 합니다.”

우이 부총리의 고별사에 공직자의 대다수가 뜨끔하지 않았을까. 권력의 콩고물을 바라고 몰려든 이 당선인의 자문단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유우익 교수는 “자신이 물러나야 또 새로운 인재가 이 당선인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임성은 기자
lseco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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