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제2부 불타는 땅 봄날의 달빛(20) 고개를 숙인 채 화순은눈을 감고 있었다.
풀처럼 밟혀가며 살아온 그 오랜 세월을 말하듯 나이보다 늘어진 그녀의 젖가슴에는 검은 젖꼭지가 튀어나와 있었다.그동안 맞은 매의 자국이 등어리며 넓적다리에 검은 보랏빛으로 얼룩져 있었다. 누구였던가.그녀의 무성한 아랫도리 털을 보며 침을 흘렸던 사내들은… 또 얼마였던가.그러나 그들이 스쳐지나간 자국이 남아 있을 리 없는 그녀의 음모는 여전히 무성하게 아랫배를 뒤덮고 있었다.
노무라가 끈을 돌려감은 가느다란 막대기를 들고 나카무라의 옆에 와 섰다.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너 이래도 말 안할래?』 눈을 감은 채 화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카무라의 막대기가 그녀의 엉덩이를 후려쳤다.아픔으로 화순의 몸이 동물처럼 꿈틀거렸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어디로 간다고 했는지만 말해라.누굴 찾아간다고 했나?』 화순이 대답이 없자,한걸음 옆으로 비켜서면서 나카무라가 그녀의 두젖가슴을 막대기로 후려쳤다.살을 찢는 듯한 비명이 화순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너랑도 어디서 만나기로 했을 거 아닌가.』 화순이 번쩍 눈을 떴다.
『죽여,죽여 줘.그럼 되잖니,이 새끼야.』 나카무라가 노무라에게 눈짓을 했다.노무라가 그녀의 앞으로 다가서는 사이 나카무라는 뚜벅뚜벅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 고문실 책상으로 걸어가그위에 걸터앉았다.
노무라가 다리를 벌리고 묶여 있는 그녀의 앞에 와 섰다.그가나카무라를 돌아보았다.시작할까요 하고 눈으로 묻고 있는 노무라에게 그가 말했다.
『너,담배 가졌나?』 막대기로 화순의 국부를 찌르려던 노무라가 깜짝 놀라듯 대답했다.
『네.』 『하나 다오.』 서둘러 노무라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들며 나카무라에게 다가섰다.그가 켜대는 성냥불로 담배에 불을 붙인 나카무라가 길게 연기를 뱉어냈다.
대단한 몸매로군.저 넓적다리며 엉덩이에 어쩌면 허리가 저렇게가는가.담배를 거푸 빨아대던 나카무라가 소리치듯 말하며 고문실을 나갔다.
『말하겠다고 하면 나에게 연락해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