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45년만의 美 對北제재 완화를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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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이 대북제재(對北制裁)완화에 관한 4개 항목을 발표했다.
통신과 언론,신용카드및 금융결제,광물수입과 대체에너지,그리고 대표부 설립과 유관한 교섭등을 허락하는 내용이 담겨있으며 전면적인 대북 교류와 국교정상화를 향한 미국의 의지가 엿보인다.반면 우리의 대북관계는 휴전선에서 정지상태에 있어 안타깝다.
지난해 10월 북-미간 제네바기본합의서가 채택되면서 북한 핵문제뿐 아니라 북-미간 쌍무관계 발전에 관한 의제가 모두 우리의 손을 벗어났다.우리에게 휴전선은 여전히 모든것이 정지된 철의 장막이지만,미국에는 문제해결의 시발점이 되고있 다.
지난해 6월 카터의 방북,최근 홀준위송환에서도 나타났듯이 이제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과 미국이 미묘한 삼각관계를 이루는 가운데 휴전선은 이미 미국에 개방되고 있다는 인상이 깊다. 지금 우리는「세계화시대」에 살고있다.근대사의 안목으로 보면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세계화비전은 제2의「개항」으로 생각할 수있다. 문제의 핵심은「남북한관계의 세계화」에 있다.미국과 북한은 이미 세계속의 남북한관계로 접근하고 있다.교류와 협력을 대북정책의 기조로 하는 미국에 있어서 휴전선은 분명히「국경」이요남북한은 대등한 국가일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미국 카 터 전대통령과 미국의 상하원 의원들이 방북했을때도 휴전선은 국경으로 생각됐을 것이다.토머스 허바드 부차관보가 미국정부의 특사자격으로 휴전선을 넘었을때도「국경」(border)을 넘었다고 했다.
미국과 북한은 그러한 인식하에서 국가간 당 연한 협상을 하고있다.때문에 우리의 대북교류와 협력의 전제조건도 세계속의 남북한관계이어야 할것이다.
남북한관계의 세계화는 혁명적인 인식을 요구한다.세계화를 위한정부의 여러가지 개혁은 분명히 새로운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세계화의 본질은 정부.민간 모두 각자 주어진 분야에서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리즘을 찬미하게 된것이지만 오직 예외 가 되고 있는후진분야가 정치와 남북한관계이며 아직도 지엽적 향토주의와 흥분된 민족주의에 머물고 있다.향토주의적으로 보면 북한은 구제의 대상이며 민족주의적으로 보면 북한은 통합의 대상이다.그러나 세계주의적으로 보면 북한은 분명히 공 존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남북한관계의 세계화는 분단현실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통일을생각하는 사유(思惟)의 세계화일 것이다.북한정권이 급사(急死)할 수도 없고 급사해서도 안된다.김정일 체제가 망해도 새로운 권력이 이를 계승할 것이다.북한이 급히 와해되는 경우,남북한이함께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때문에 진정한 통일은 남북한관계가 국가간 정상화 과정을 거친 후 어느 시점에 가서 서로가 필요로 하는 계약(契約)에 의해 통합된「이익사회」를 형성하는데 있을 것이다.이익사회 통일론은 남북 한 지배엘리트와 일반대중 모두에게 이익이되는 계약적 결합으로『공동사회』만을 중시하는 발상이다.공동사회 통일론은 막연하게 민족동질성 회복에 의한 민족공동체 형성만을 강조할 뿐,『누가 누구를 위한 무슨 계약을 왜해야 하나』에 대해 시 원한 답을 주지 못한다.북한은 이미 공동사회가 의미하는 민족동질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그 곳에는 나름대로 생존을 위한 이익사회가 형성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남북한관계의 세계화는 남북한의 존재를 실재하는 국제사회 속에서 인식하고 이 둘의 존재를 하나의 이익사회로 묶는 계약적접근책에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미국의 대북한무역금수해제조치는 남북관계를발전적으로 푸는 실마리로 되고 북한과 화해및 교류를 적극 추진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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