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형/사/립/고/ 수월성교육vs귀족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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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형 사립고 허가 권한을 교육부가 아닌 시·도 교육청에 완전 이양하겠다.” 지난 2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밝힌 내용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주요 교육 공약인 ‘자율형 사립고 100개 설립’을 재확인한 것이다. 특수 목적고(특목고), 자립형 사립고(자사고), 자율학교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교육 관계자들의 전망도 조금씩 엇갈린다.

사 운영의 자율성이 대폭 늘어난 자율형 사립고. 특목고 시장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것인가. 아니면 현실성없는 공약(空約)으로 그칠 것인가. 자율형 사립고 설립과 관련, 크게 사교육 시장 억제책으로 보거나 저소득층 교육기회 확대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참여정부의 큰 흐름이었던 사교육 억제정책이 그대로 이어질 것인지, 당선자의 스타일에 맞게 철저하게 시장원리에 입각한 교육정책을 펼 것인지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 당선인의 대학 동기인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지난해 12월 말 중국 방문길에 이미 자율형 사립고 설립 의지를 천명했다. 기존의 외국어고와 자사고에 자율형 사립고까지 보태져 ‘범(汎)특수고 시대’가 열릴 조짐이다.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
단 사교육 시장에선 이 당선인의 교육정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100개의 자율형 사립고 설립이 시장의 파이를 더 키울 것이라는 예상이다. 특목고 전문 교육기관인 이지알앤디의 정랑호 대표는 “이 당선인이 얘기한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는 신념을 그대로 보여주는 정책”이라며 “사교육을 무조건 막기보다 이들의 좋은 콘텐트를 공교육에서 적절히 흡수함과 동시에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장학정책을 실시한다면 교육격차를 해소하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페르마에듀의 신동엽 대표도 뜻을 같이하며 “대학과 외고입시 시장규모는 다소 줄어들겠지만 상대적으로 자율형 사립고의 시장규모가 커져 전체적으로 시장이 다소 확대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정 대표는 실현 불가능 쪽에 무게를 실었다. 그에 따르면 자사고는 최근 심각한 운영난을 겪고 있다. 일반고의 몇배나 되는 등록금을 거둬도 한해 수십억 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이같은 적자를 감수할만한 기업이 많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신 대표는 생각을 달리 한다. “학생 정원이 늘고 등록금도 자율화되면 충분히 기업의 관심을 모을 수 있다”며 “참여 기업은 큰 브랜드 상승 효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형 사립고는 자사고와 마찬가지로 ‘재정결함보조금’(정부 지원금)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학교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되고,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장학금(정원 30%수준)이 대폭 지원될 예정이다.
강남의 학원가엔 벌써 변화의 기미가 포착되고 있다. 외고를 준비하던 학생들이 자사고 대비반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자사고 전형방법이 자율형 사립고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거라는 추측때문이다.
 
“사교육 키우는 정책이나 다름없다”
선 학교에선 자율형 사립고 전환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다. 한 자사고의 교감은 “자금의 여유가 있는 몇몇 대기업이라면 모를까 100개씩이나 되는 기업이 자율형 사립고를 운영할 수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관심이 있더라도 사업성 결여를 따지는 노조 등의 반발로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율형 사립고 정책을 만든 이 당선인 측 K교수의 설명은 다르다. 먼저 법인의 재정부담 문제에 대해 “이미 입안할 당시 설문조사에서 이 정책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서울에서만 42개교가 자율형 사립고 전환에 관심을 보였다”며 “정부지원금이 없어지는 대신 법인 전입금 비율을 대폭 낮추고, 학교운영 자율 및 장학금 정책이 실시되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등록금이 지나치게 비싸 교육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현재 사립고의 세 배 정도 선에서 등록금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식대나 기숙사 비용, 과외활동 비용이 모두 포함돼 있어, 일부 우려처럼 귀족학교로 보긴 어렵다”고 해명했다.

또 “등록금을 원천적으로 제한하지는 않지만 천정부지로 치솟을 가능성은 없다”며 “이는 등록금이 높아지면 그 비율에 따라 재단 전입금이 함께 늘어나 기업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자율형 사립고가 또 다른 입시과열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선 지원 후 추첨제를 도입해 전형에서 선발고사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줄여 사교육 과열 현상을 잠재울 것”이라고 밝혔다.

프리미엄 김지혁 기자 mytfact@joongang.co.kr
사진=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자율형 사립고
민족사관고·전주 상산고 등 6개 자사고와 같이 학교 운영의 자율성이 보장된다. 그러나 등록금의 법인 전입금 비율이 다르다. 10%대로 자사고(평균 25%)보다 훨씬 적다. 자사고와 달리 전국대상으로 학생을 모집하진 않는다. 공주 한일고,광명 진성고 등 자율학교(전국 31개)와도 다르다.자율학교는 정부 지원이 있는 만큼 등록금은 일반 사립고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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