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실용외교 성과 내려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3호 35면

이명박 정부가 새로운 출범을 채비하고 있다. 국익을 중시하는 창조적 실용외교를 전개하겠다고 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가 크다. 그러나 과거 10년 동안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명박 정부에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이명박 당선인의 핵심 화두는 경제에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경제와 더불어 가장 중차대한 사안 중의 하나가 북핵 문제와 남북 관계다. 안보문제 선결 없이 ‘경제 살리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예컨대 북한 핵 문제가 악화하고 서해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증권시장과 국내 투자는 얼어붙고 외국인 투자유치 활성화와 민생경제 살리기도 실종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길 바란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공약 중 하나가 ‘비핵, 3000’이다. 북한이 비핵화만 하면 북한 주민의 소득을 10년 이내에 미화 3000달러로 만들어 주겠다는 야심 찬 공약이다. 그러나 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보다 유연한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북한 핵의 완전한 해체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비핵, 3000’에 유연성이 가미되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남북 관계의 진전이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교착상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2단계의 불능화와 성실 신고가 만족스럽게 이루어지고 3단계 해체 과정이 가시화되면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과 교류·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북에 보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비핵, 3000’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3차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순차적으로 4자 평화정상회담 제안도 전향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남과 북,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정상들이 서로 만나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고 한반도의 영구 평화를 위한 로드맵을 만드는 동시에 북·미 관계 정상화에 원론적 합의를 한다면 우리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그 이상 바람직한 것은 없다고 본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한·미·일 공조를 복원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러한 움직임 때문에 주변국들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사일방어(MD)체제와 관련된 한·미·일 3국 공조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한반도 미사일방어는 실익이 없고 중국·러시아·북한을 자극하여 동북아에 신냉전구도를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보편 가치의 외교를 표방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이것이 실리외교와 모순관계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반목과 대립을 넘어선 협력과 통합의 지역질서 구축 노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6자회담의 진전을 통한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체 구축과 동북아 자유무역지대의 구체화 작업은 우리의 국익 증진에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그 때문에 역내 다자주의 외교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특히 당부하고 싶은 사항은 과거 정책을 완전히 부인하고 단절해서는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부시 대통령이 전임자인 클린턴 대통령을 부인하는 ‘ABC(anything but Clinton, 클린턴은 안 돼)’ 정책 때문에 얼마나 중대한 시행착오를 범했는가. 결코 ‘ABR(anything but Roh, 노무현 정책은 안 돼)’라는 자승자박의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제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실사구시의 입장에서 재평가해 승계할 것은 승계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 생각된다.

외교에는 상대가 있고 구조적 제약이 따르게 마련이다. 국내 정책과 달리 불확실성이 높다. 그럴수록 신중, 인내, 그리고 역지사지의 지혜가 필요한 법이다. 가끔은 단정적 외교 수사보다는 전략적 모호성이 더 큰 득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지세력은 물론 비판세력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국민적 합의의 실용적 외교안보 정책을 전개하기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