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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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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해 TV 오락프로 중 최고 히트 상품은 MBC ‘무한도전’이다. 세대를 불문하고 폭발적 인기를 누려 국민 오락프로의 반열에 올랐다.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일부 에피소드가 일본 후지TV ‘스마 스마’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무한도전’ 팀을 진행자로 내세운 MBC ‘가요대제전’ 오프닝은 일본 그룹 스마프의 콘서트 오프닝 영상을 표절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무한도전’은 6명 남자들이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며 경쟁하는 프로다. 모두 어딘가 부족하고 유치한 인물들이다. 도전 과제 역시 거창하기보다 사소했다. 대부분은 하나마나한 별 의미 없는 것들이다.

‘무한도전’의 인기는 성인문화의 유아화와 행위의 합목적성에 대한 부정을 보여 준다. 6명의 남자들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딱 초등생 수준이다. “좋아, 가는 거야” “죽지 않아”라며 불굴의 정신을 보이지만 정작 하는 일은 하도 심심해서 해보는 장난질 같은 것이다. 이처럼 사소한 과제에 죽기 살기 목숨 거는 설정은 한동안 우리 TV를 지배했던 ‘공익 버라이어티’ 전통과 결별하는 것이다. 선행을 하거나 교통질서를 지킨 모범 시민에게 포상하는 캠페인성 오락프로, 혹은 오락에도 의미와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오락프로 말이다. 하나같이 2등 인생 캐릭터인 데다 망가지는 차원을 넘어 실제 자기 몸을 혹사하는 것도 대중에게 묘한 쾌감을 안겼다.

그러나 신년 벽두 ‘무한도전’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협동적 팀 플레이와 합리적 리더십에 있다. 오락프로의 집단MC 체제는 새로울 것 없지만 ‘무한도전’은 팀플레이의 모범을 보였다. 철저하게 역할을 분담했고 캐릭터나 웃음 유발 방식도 상호의존적이었다. 가령 박명수를 데뷔 14년 만에 인기 정상에 올려 놓은 호통개그도 상대가 있어야만 가능한 리액션 개그였다. 거기에 군림하지 않는 메인 MC 유재석이 한몫했다. 멤버들이 이판사판 치고 받으면 그 무한 공방을 조율해 냈다. 자기를 앞세우기보다 타인의 장점을 끌어내고, 멤버 간 갈등을 촉발하면서도 봉합하는 리더십이다. 이런 조율자로서의 리더십과 협동적 팀 플레이가 평균 이하 ‘지질한’ 캐릭터들이 모인 ‘무한도전’의 성공 비결이다. 신년 벽두 새 판을 짜는 한국 사회가 귀 기울일 만한 교훈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