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 막자고 돈 쓰고 사고만 내는 건 아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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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이 일부 구간에서 실시하고 있는 구간 과속 단속에 대해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간 단속은 시작과 종료 지점의 통과 시간을 측정해 평균 속도로 과속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네비게이션이 널리 보급되면서 단속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만 잠깐 속도를 줄였다가 다시 과속을 하는 ‘캥거루 효과(Kangaroo Effect)’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경찰청은 지난해 말 영동고속도로에서 시범 실시한 것을 시작으로 점차 실시 구간을 확산해간다는 계획이다.

현재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단속 카메라 위치만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으로 구간 단속을 피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300만대 이상 보급된 네비게이션은 대부분 위치 파악이 아닌 단속 회피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방식으로 구간 단속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새로운 단속 방식은 네비게이션 교체 수요를 높여 소비자의 부담만 늘어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구간 단속 방식 도입을 지지해온 도로공사 도로교통기술원의 강정규 연구위원은 “현 네비게이션의 소프트웨어 내용을 일부 추가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네비게이션을 교체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소프트웨어 내용을 일부 추가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런 방식은 과속 단속 구간에 접어들 때 네비게이션이 ‘이 구간은 평균 시속 80㎞ 구간입니다’라고 안내해주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단속 구간 내내 평균 속도 위반 여부를 경고해주는 방식을 선호할 것이란 얘기다. 네비게이션 업계에서는 이 경우 소프트웨어나 기계의 전면 교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려되는 또 다른 부작용은 구간 단속 종료 지점에서의 교통 정체 문제다. 이 구간에서 지나치게 속도를 높였다고 판단한 운전자들이 종료 지점 앞에서 속도를 일시에 늦추거나 갓길에 잠시 정차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국내에서 세계에서 네번째로 구간 단속을 실시한다는 방침이 나왔을 때부터 교통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됐던 문제다. 이에 대해 강 연구위원은 “과속 단속 구간은 보통 5㎞ 안팎의 짧은 거리로,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평균 속도를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반면 교통 전문가들은 여전히 이런 기대가 순진한 발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단속 시작 지점을 지나면 습관적으로 다시 과속하게 되고, 종료 지점에서 이를 바로 잡으려 들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종료 지점 인근의 교통 정체와 사고 가능성도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캥거루 효과를 막으려다 자칫 구간 단속 종료 지점의 병목 현상만 강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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