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부모보다 형제가 걸렸을 때 더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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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에도 가족력(家族歷)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 부모와 형제 간 암이 있으면 자신도 같은 종류의 암에 잘 걸린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부모와 형제가 암일 경우 내가 암에 걸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암 종류별로 가족력이 얼마나 되는지 밝힌 연구결과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국제 암 저널'지는 최근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와 독일 암연구 센터의 연구결과를 인용, 특정 암의 가족력이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했다.(그래픽 참조) 1932년 이후 스웨덴에서 출생한 1천만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규모 역학조사 결과다.

◇대부분의 암에서 가족력이 관찰됐다=종류를 가리지 않고 암은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집안에 특정 암에 걸린 환자가 있으면 그렇지 않은 가족에 비해 자신이 특정 암에 걸릴 확률이 현저히 증가했다는 것.

암 종류별로는 악성림프종(호지킨병)이 가장 가족력 경향이 높았다. 부모가 호지킨병이 없는 경우에 비해 4.88배나 높았다.

다음으로 고환암이 4.26배,갑상선암이 3.26배로 뒤를 이었다. 폐암은 2.9배, 위암도 2.17배로 부모의 경향을 따랐다. 이번 연구의 단점은 한국인에게 많은 간암이 제외됐다는 것이다. 서구인에겐 간암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암 역시 부모의 간염 유무와 위생 등 가족력에 좌우되기 때문에 예외는 아니다.

◇형제.자매 간 암이 더 위험하다=같은 암이라도 형제.자매 간에 생긴 암은 부모에서 생긴 암보다 자신에게 발생할 확률이 훨씬 높았다. 예컨대 부모가 위암일 경우 자신이 위암에 걸릴 확률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2.17배 높았다.

그러나 형제.자매가 위암일 경우 이 확률은 3.29배로 올라갔다. 형제.자매간 암 가족력이 가장 높은 암은 고환암이었다. 형제에게 고환암이 생긴 경우 자신이 걸릴 확률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9.28배나 높았다. 악성림프종(호지킨병)은 5.94배, 콩팥암 4.74배로 뒤를 이었다.

물론 부모와 형제.자매 간 동시에 특정 암이 있을 경우 가족력이 가장 높았다. 난소암의 경우 31.6배, 피부암은 17.2배, 위암은 12.66배, 대장암은 5.38배, 폐암은 5배, 유방암 3.3배나 됐다.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부모보다 형제자매 간 암이 더 위험한 이유는 유전자가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선 유전자를 각각 절반씩 물려받지만 형제는 부모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같은 위암이라도 부모에게 생긴 위암보다 형제자매간 생긴 위암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가족력이 단순히 정자와 난자를 통해 대물림되는 유전만은 아니란 점도 알아둬야 한다. 가족끼리 서로 수십년동안 공유하는 생활습관이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 뜨거운 음식을 좋아한다면 식도암이, 불에 탄 고기나 짠 음식을 즐겨 먹는다면 위암이, 부모가 간염바이러스에 걸려 있으면 간암 확률이 높다.

◇대책은 무엇인가=특정 암이 부모나 형제자매 간 발생한다면 먼저 가족들이 공유해온 습관 중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

폐암의 경우 흡연, 위암과 대장암은 식사(육류 섭취와 짠 음식 등), 유방암과 전립선암.난소암은 운동부족과 비만, 피부암은 햇볕에 장시간 피부를 노출한 것이 원인이다. 이들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다.

생활습관이 문제가 아니라면 유전자 탓이다. 이 경우 예방은 불가능하므로 대책은 철저한 조기검진뿐이다. 예컨대 음식을 싱겁게 먹고 불에 탄 고기나 가공식품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집안에 위암이 많다면 남들이 40세 이후 2년에 한번 내시경 검사를 한다면 35세 이후부터 1년에 한번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한다.

◇유전성 암도 있다=생활습관보다 유전자가 1백% 좌우하는 암도 있다. 대장에 수백 개의 작은 혹이 생기는 가족성 용종증의 경우 아무리 생활습관에 조심해도 내버려두면 1백% 대장암이 생긴다. 따라서 이 경우 예방 차원에서 암이 생기기 전에 대장을 수술로 잘라내야 한다. 전체 대장암의 1%가 가족성 대장암 등 유전되는 대장암이다.

유방암이나 난소암.전립선암.위암도 드물지만 유전성 암이 있다. 유전성 암의 특징은 20대와 30대의 젊은 연령에 생기며 가족 간 세명 이상이 발생하는 등 강한 가족력을 보인다는 것.

이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은 국립암센터나 삼성서울병원 유전암클리닉 등에서 실시하는 혈액검사를 통해 암 유전자가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유전성 암은 생활습관 개선과 상관없이 암이 생기기 때문이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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