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걸고 7시간 낚싯배 타고 가는 이어도 기지요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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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남쪽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 떨어진 곳에 있는 수중 암초 이어도. 이곳에 세워진 종합해양과학기지(http://ieodo.nori.go.kr)를 관리하는 운영요원 12~15명은 소형 낚싯배로 이곳을 오간다. 국가가 튼튼한 배를 마련해주지 않아 운영요원들은 제주 도두항에서 국토 최남단 이어도 과학기지까지 200㎞ 뱃길을 안전에 취약한 낚싯배로 오가고 있는 실정이다. 2003년 12월 7일 남극 세종 과학기지에서 근무하던 전재규 연구원(27)이 구조 보트가 전복돼 아까운 목숨을 잃었던 비극이 재현될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원장 심동현)은 지난해 이어도 해양기지(http://ieodo.nori.go.kr)에 장비 관리를 위한 기술인력을 8번 파견했다. 이들은 왕복 16회 모두 현지 어민 소유의 10t짜리 소형 낚싯배를 이용했다. 낚싯배가 사람과 물자를 실어나르는 여객 행위를 하는 것은 낚시어선업법 위반이지만 한국해양연구원과 해양조사원은 4년 6개월 넘게 낚싯배를 빌려왔다. 선박 통제 업무를 맡고 있는 제주해양경찰서는 별다른 조치 없이 낚싯배를 출항시켰다.

위험을 무릅쓰고 낚싯배를 이용하는 것은 해양조사원 부산사무소가 관리하는 관용 선박보다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제주 북부 도두항에서 이어도까지 낚싯배 이용료는 출항당 500만원, 시간은 편도 7시간 정도 걸린다. 이에 비해 해양조사원 소유 156t급 관용 선박(바다로 3호)을 올해 초 시험 운항한 결과 제주에서 이어도까지 왕복 연료비가 1500만원 이상 들고 시간도 편도 12시간(시속 18㎞) 걸렸다. 소형 낚싯배는 위험을 무릅쓰고 시속 30㎞ 이상으로 달리기 때문이 시간이 덜 걸린다는 것이다.

2003년 6월 11일 완공된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는 바다 밑에 있는 섬인 이어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약 65m 떨어진 곳에 설치됐다.

수중 암초인 이어도에는 선박 접안시설이 없기 때문에 요원들이 이틀 정도 기지에 머무르는 동안 배는 제주로 돌아왔다가 다시 사람을 데리러 간다. 운영요원들이 기지를 한번 다녀오려면 배가 두차례 왕복해야 하기 때문에 한차례 기지 방문때 낚싯배로는 총 1000만원, 관공선은 3000만원 이상 돈이 들게 된다.

특히 제주~이어도 해역은 중국 어선들이 집단 조업을 하는 해역이어서 충돌사고의 위험도 매우 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운영요원들이 심야에 낚싯배를 탄다는 점이다. 해양조사원 관계자는 "이어도에 아침 일찍 도착해 작업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제주 도두항에서 밤 12시나 2시께 출발한다"고 말했다.

자칫 충돌사고가 날 경우 대형 인명 피해는 물론 재산 손실까지 우려된다. 배에는 보통 국립해양조사원 공무원과 기술자ㆍ연구자 등 12~15명이 타고 수천 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첨단장비와 소모품도 함께 실린다. 불법 항해이기 때문에 사고가 나도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익명을 요구한 한 탑승자는 “추위와 장거리 야간 항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출항 전 소주를 한 모금씩 마신 다음 배를 타야만 그나마 잠든채 버틸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파도가 치고 배가 심하게 요동칠 때는 배가 뒤집혀 바다에 빠져 죽을까봐 두려웠다”며 “워낙 먼 거리이고 바닷길도 험해 선주들도 운항을 꺼리는 구간”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국립해양조사원측은 현재로서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며 난감해한다. 해양조사원 관계자는 “헬기로 오갈 수 있겠지만 헬기를 소유한 해경의 자체 이용계획때문에 쉽게 이용할 수 없고 탑승인원도 적다”며 “원활한 기지 관리와 관리원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해양기지 운항 전용선박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해양조사원은 지난해 해양기지 전용선박(70t급, 최고시속 80㎞)을 구입하기 위해 75억원의 예산을 기획예산처에 신청했지만 기획예산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양조사원 관계자는 “전용선박 설계 건조에는 2년 정도가 필요해 당장 예산이 확보된다고 해도 2010년에나 운항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선박 건조에 들어가더라도 2년 정도 더 낚싯배를 타고 다녀야 할 형편인데, 그나마 언제나 예산이 잡힐지 모른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선박이 확보되면 일반 국민들에게도 이어도 방문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는

2003년 6월 기상ㆍ해양ㆍ환경 관측을 목적으로 수중암초인 이어도에 건립된 과학기지다. 이어도 과학기지는 무인으로 운영되며 기지에 설치된 첨단 관측장비들은 선박 운항과 해역 관리에 유용한 자료들을 전송하고 있다. 이들 장비들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기술자들의 정기 점검과 관리가 필수적이다. 파도에 휩쓸려 없어지거나 고장난 장비를 수리ㆍ교체해야 하는 것은 물론 해풍에 닳은 태극기도 새 것으로 갈아줘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 인력이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는 지난해 초 한국해양연구원에서 국립해양조사원으로 관리 운영권이 이양됐다.

이어도는 마라도에서 서남방으로 149㎞, 중국 퉁타오(童島)에서 북동쪽으로 245㎞, 일본 도리시마(鳥島)에서 서쪽으로 276㎞에 위치해 있는 수중 암초로 평화선 내에 있으며, 주변국들과 동중국해에 대한 배타적 경제수역(EEZ) 확정 시 중간선 원칙에 따라 한국이 해양 관할권을 갖게 된다. 하지만 지난해 중국은 이어도 해양기지와 이어도 관할권은 별개라는 입장을 밝혀 양국간 기싸움이 팽팽하다.

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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