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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를향한무비워>15.뉴욕 영화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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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뉴욕국제영화제는 비평가들과 뉴욕타임스.빌리지 보이스.NBC등언론이 주도하는 고급영화들의 축제다. 할리우드 대형영화사들의상업영화를 철저히 배제한채 전세계의 작품성 높은 영화만 초청해지성과 권위의 영화제로서 품위를 유지한다. 칸.베니스.베를린영화제와함께 세계 대영화제로 꼽히지만 이들중 유일한 비경쟁 영화제다. 어떠한 상도 상금도 없다. 감독은 심사위원들의 초청결정자체로 수상과 같은 명예를 얻는다.
지난해 17일간 뉴욕 맨해튼 한복판 공연센터인 링컨센터내 앨리스 튤리홀과 월트 리디극장에서 열린 제32회 뉴욕영화제의 경우 16개국에서 27편의 작품만 초청됐다.
미국작품이 9편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에서도 『그 섬에 가고싶다』로 박광수감독이 초청받았다.88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않는다』의 이장호감독 이후 한국감독으로서는 두번째 초청이었다.
지난해에는 대만영화 2편을 비롯해 중국.홍콩.이 란이 각각 1편씩 나와 아시아영화가 강세를 보였으며 튀니지.쿠바가 첫선을 보였다. 초청되면 일반 상영에 앞서 우선 기자를 상대로 시사회를 열고 끝난 뒤 같은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갖는다.말이 기자회견이지 감독에 대한 공개 심문장 같은 분위기다.
미국언론인 특유의 야유와 독설로 가득찬 질문에다 『나도 영화를 웬만큼 안다』는 영화평론가들의 자존심 섞인 물음,거기다 『내 작품에 대한 신념은 확고하다』는 감독들의 방어공세가 겹쳐 치열한 난상토론이 연일 벌어진다.『독립시대』를 출 품한 대만의에드워드 양감독은 『영화가 대만의 현대 삶을 그렸는데 무슨 서양 코믹오페라극를 흉내낸 것같다』는 독기어린 질문을 받았다.양감독은 『타이베이에서의 삶 자체가 코믹오페라 같다』고 대답했다. 한국의 박광수감독도 『당신 영화는 50년대 멕시코 영화를 흉내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무례한 질문공세를 당했다.그는 『50년대 멕시코영화를 본 적이 없고 나는 나의 영화를 만든다』는 말로 공세를 이겨냈다.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이같은 「영화작가해부」과정을 거친 후뉴욕의 언론들은 냉정한 평가와 찬사의 글을 쏟아놓았다.
뉴욕영화제에 대해 미국영화계가 벌이는 지성의 잔치라는 평과 함께 미국 영화산업전략의 한 축 노릇을 한다는 비판적 해석도 만만치 않다.
뉴욕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리처드 페냐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경계선을 오가는 영화축제』라고 말했다.뉴욕영화제를 통해 미국이할리우드를 주축으로 한 흥행영화는 물론 고급영화에서도 선도역할을 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말이었다.
그는 『뉴욕영화제는 대중적인 할리우드영화에 대해 경멸에 가까운 눈길을 보내면서 철저히 배제하는 대신 예술혼과 정열,저력을갖는 미국의 독립영화사들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고 말했다.할리우드 영화만 미국영화로 아는 세계인에게 미국영화가 예술성에서도 세계를 주도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강한 것이다. 흥행성보다는 작품성을,재미보다는 지성을 따지는 이 영화제는 매년 겉으로 표출되진 않지만 도도히 흐르는 소주제를 하나씩잡는다.『크라잉게임』이 초청된 92년에는 「동성연애」,『패왕별희』가 나온 93년은 「도도한 역사에 시달리는 휘말 린 인간들의 운명」을,지난해에는 「공동체의 해체」가 그것이었다.이런 시도는 단순히 영화를 즐기는 시민축제의 수준을 넘어서 소수 지성인들의 영화에 대한 사고를 지배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뉴욕영화제는 최근 흥행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기 시작했다.한국에서도 관객동원에 성공한 『붉은 수수밭』『패왕별희』『국두』『피아노』등은 여기 초청된후 세계적인 흥행성공을 거둔것이 대표적 사례다.아울러 흥행 보증수표가 되는 아카데미 영화제나 전세계 유명영화제의 시상결과와도 큰 연관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에도 영화제 기간중 전세계에서 5백여명의 영화수입업자들이 방문해 작품을 살폈다.영화지성의 축제가 영화산업측면에서도 큰 중요성을 갖게 된 것이다.
초청작중 미국영화가 전체의 3분의1을 차지한데 대해 현지언론의 눈길은 차가웠다.뉴욕 타임스는 『별로 이국적이지 않은 영화제로 변질되고 있다』는 경고의 기사를 실었다.지나친 미국우위의운영으로 뉴욕영화제의 앞날이 어둡다는 지적인 것 이다.
뉴욕=蔡仁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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