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통화위기-무모한 환율정책이 禍 자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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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페소貨의 폭락사태가 멕시코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으며 국제금융시장에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멕시코투자자금의 대부분을 대고 있는 뉴욕의 금융가는 이같은 위기상황이 자칫 남미경제 전체로 확산되지나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투자자들 사 이에선 이른바 신흥시장(이머징 마켓)에 대한 투자위험을 재고할 움직임이 번지고 있다.이번 페소화 폭락사태는 준비없이 단행한 외환자유화가 경제전체를 얼마나 위태롭게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또 개도국이 국내의 경제체질을 충분히 다지 지 않고 의욕만 앞세워개방화.국제화를 추진할 경우 겪게되는 거시경제운용의 어려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지난해 선진국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멕시코가 오늘날 처한 경제위기는 오는 96년 OECD가입을 앞두고 외환 .자본자유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적지않은 시사를 던져준다.
[편집자註] 멕시코의 페소貨 폭락사태가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불과 보름만에 통화가치가 3분의1이상 떨어지면서 주가가 덩달아 폭락하고 물가가 급등하는 등 멕시코 경제는 한치앞을 가늠하기 힘든 위기상황을 맞고있다.
멕시코정부는 지난 3일▲재정지출 삭감▲임금및 물가 통제▲긴급차관도입등 「경제위기 비상대책」을 발표했지만 아직 약효는 찾아볼 수 없다.지난해말 미국의 금융지원계획및 멕시코정부의 대책마련 기대감속에 일시 반등했던 페소화는 정작 대책 이 발표되자 다시 하락세로 기울고 말았다.6일현재 페소화의 對달러 환율은 5.60페소로 3일이후 9.4% 떨어졌다.
임금통제에서 드러나듯 결국은 전 국민의 고통분담이 대책의 핵심인데 정부가 과연 노조등의 호응을 이끌어낼 위기관리능력을 갖고 있는지 의문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디요 신임 대통령이 취임하던 지난해 12월초까지만 해도 멕시코는 전세계 개발도상국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처지였다.살리나스 前대통령은 퇴임사에서 『멕시코는 시장경제및 개방경제로의이행계획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자평하고 『인 플레.만성적자.실업만연등의 현상은 이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특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체제는 멕시코 경제의 장래를 보장하는 듯했다.
그러나 상황은 불과 3주만에 완전히 뒤집혔다.
사태의 발단은 경제외적인 문제에서 불거져나왔다.12월19일 남부 치아파스州의 농민반군이 공세를 재개하자 멕시코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주가는 급락했고 외환시장에선 외국인들의 페소화 매도주문이 폭주했다.
사태는 멕시코정부가 12월22일 아무런 대책없이 자유변동환율제를 전격 시행하면서 일파만파로 확대됐다.멕시코정부는 이에앞서물가안정및 외국인자금 유치를 이유로 개방경제에 어울리지 않는 인위적 환율제한책을 써왔다.페소화의 對달러환율 상한선을 3.46페소로 정해놓고 페소가치가 그 이하로 떨어질라 치면 보유외환을 풀어 환율을 떠받쳤다.
고정환율제나 마찬가지였다.그런데 무리한 외환시장 개입으로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내던 차에 환율절하압력이 갑자기 거세지자멕시코정부는 하루아침에 이 제도를 포기했던 것이다.막혔던 둑이터지듯 페소값은 불과 1주일새 35%나 폭락■ 다.
인위적 환율통제로 페소화는 멕시코의 경제력에 비해 지나치게 高평가돼 있었던 게 사실이다.3백억달러에 달한 경상수지적자,1천6백억달러를 넘는 외채,분명히 미국보다는 높은 물가상승등을 감안할 때 페소화가치는 25~30%정도 과대평가됐 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경고해 왔다.언젠가는 제자리를 찾아 떨어질 운명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번 페소화 폭락사태는 전임 살리나스정부의 무모한 환율통제정책에 근본 뿌리를 두고있었다.
물론 아무런 대비없이 하루아침에 환율제도를 뒤바꾼 세디요정부도 무모하기는 마찬가지였다.환율 평가절하가 불가피했더라도 점진적이고 일관성있는 충격완화요법이 필요했다.
아무튼 이번 사태로 멕시코정부는 국제 경제무대에서 위기관리능력 「0점」이란 평가를 받게됐다.
게다가 국제투자가들은 최근 6년간 멕시코 정부가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통해 조달했던 수백억달러의 행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멕시코 야당은 이미 살리나스 전임 대통령을 국고유용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난 5일부터 멕시코시티에선 정부의 경제실정에 항의하는 극렬한 시위마저 벌어지고 있다.
사태는 갈수록 어렵게 꼬여가고 있다.
〈金光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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