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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어린이책] 10대들 ‘성과 사랑’ … 숨김 없는 그 속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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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호기심
김리리 외 지음, 김경연 엮음,
창비, 264쪽, 9000원, 초등 고학년 이상

이 시대 10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사랑과 성(性) 이야기 일곱 편을 묶었다. 청소년기 사랑을 둘러싼 달콤쌉싸래한 오해, 풋내 물씬한 치기, 아픈 상처 등을 건강하고도 현실적으로 그렸다. 책을 엮은 평론가 김경연의 말마따나 “어떤 아이들은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돌려 읽으며 몽환적인 사랑을 꿈꾸고, 또 어떤 아이들은 성인 비디오나 야동을 훔쳐보며 앞뒤가 쑹덩 잘린 성관계가 남녀관계의 정수인 양 받아들이는 현실”에서 한발 앞으로 나간 기획이다.

작가군도 화려하다. 『유진과 유진』의 이금이, 『느티가 아프다』의 이용포, 『환절기』의 박정애 등 그 동안 우리 청소년문학의 발판을 다져온 작가들에 『길 위의 집』을 쓴 소설가 이혜경과 동화 『엄마는 거짓말쟁이』의 김리리까지 동참했다.

이야기 하나하나에는 이제 막 이성에 눈 뜬 10대들의 속내가 실감나게 펼쳐진다.

단짝 친구에게 남친이 생겼다. “너 먼저 가. 나 남친이랑 약속이 있어”란 희영의 말에 문순은 외톨이가 된 기분, 비참한 심정이다. ‘제발 좀 깨져버려라’. 구렁이처럼 엉큼한 마음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며 혀를 날름거렸다.

그런 처량한 신세에 마침표를 찍으려나. 반장 상욱이 아무래도 수상하다. 자꾸만 문순을 힐끔거리고, 쭈삣쭈삣 이야기를 건네려 애쓰는 기색이 역력하다. ‘혹시 사랑 고백이라도 하려는 거 아니야?’ 문순은 코끝이 간질간질한 게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진실은…. 문순의 심정은 ‘상실, 무안, 비참, 허무, 굴욕’이다. (김리리 ‘남친 만들기’)
 
아이들이라고 ‘계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왕이면 부잣집 딸과 사귀고 싶고, 공부 잘하는 아이와 친하고 싶다. 자신 속의 그런 속물근성을 깨닫고 당황하는 아이들. 서글픈 현실이긴 하지만 아이는 그렇게 어른의 세계로 한발 들여놓는다.
 
미대를 지망하는 ‘마마보이’ 고교생 선우. 같은 미술학원에 다니는 희수와 사귀게 됐다. 소문에 따르면 희수는 유학생 출신의 부잣집 딸. 학교도 안 다니고, 취미로 미술을 배우며, 자기집에서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자유분방한 아이다. 그런 희수에게서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은 선우는 행복했다. 세상이 향기로 가득찬 것 같았다.

그런데. “유학 갔다 온 것도 아니고, 주유소집 딸도 고시원집 딸도 아닌, 허름한 옥탑방에 살며 주유소 알바를 하는, 학교 안 다니는 부모 없는 아이. 그게 희수였다. 배경을 보고 좋아했던 것이 아닌데, 선우는 발밑에 허공이 놓인 듯 맥이 빠졌다.”(125쪽, 이금이 ‘쌩레미에서, 희수’)
 
이야기 속 선우 엄마는 선우에게 훈수를 뒀다. “지금 중요한 시긴 거 알지? 까딱 한눈 팔았다간 인생 망치는 거야. 여자는 대학교 가면 얼마든지 사귈 수 있으니까….”
 
맞다. 연애야 언제 해도 늦지 않다. 하지만 10대의 풋사랑. 그 느낌은 지나가면 그뿐인 것을. 그 한바탕 열병을 엿보고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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