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뛰자2008경제] 자동차 세계 정상 도요타 와타나베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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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요즘 와타나베 가쓰아키(渡邊捷昭·65·사진) 도요타자동차 사장의 표정은 밝지 않다. 1931년부터 76년간 세계 정상을 지켜 오던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를 누르고 생산 대수나 매출액 모두 수위의 자리로 올라섰는데도 말이다.

그가 긴장을 늦추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혹시라도 정상 등극으로 조직 내부에 자만심이 번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007년 11월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도, 12월 25일 연말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넘버 1이나 선두주자라고 하는 말에 흔들리거나 정신이 산만해져선 절대 안 된다”는 말을 반복했다. 최근 증가 추세인 도요타 차량의 리콜 사태도 그로선 도무지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하나 이유는 “도요타가 꿈꾸는 진정한 정상의 자리는 아직 멀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진정한 정상’. 자동차 업계를 석권한 와타나베 사장의 다음 목표는 ‘세계 최대, 최고 기업’이다. 스스로의 성공모델을 넘어 성장의 한계에 도전하는 도요타의 ‘제2의 비상’의 목표다.

도요타의 창립은 37년. 같은 해의 생산은 4013대에 불과했다. 그게 2007년에는 951만대로 치솟았다. GM의 925만9000대를 껑충 뛰어넘었다. 70년 사이 2300배 이상으로 덩치가 커진 셈이다. 생산 면에서는 GM과 경쟁을 벌인다고 하지만 이익 면에서 도요타와 GM은 이미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졌다. 2007년 3분기 결산의 당기 손익에서 도요타는 약 4500억 엔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GM은 4조4000억 엔이라는 거액의 적자에 시달렸다.

더욱 돋보이는 것은 도요타의 기세다. 5년 전에 비해 매출액은 10조 엔, 순이익은 1조 엔 늘어났다. 그 사이 미국의 IBM 규모의 기업을 하나 추가로 얻은 셈이다. ‘규모’와 ‘성장력’을 동시에 갖추고 뻗어나가고 있는 기업은 제조업에서는 사실 도요타만한 곳이 없다. 서비스업을 포함해 모든 산업을 둘러봐도 5년간 매출과 이익이 줄곧 급성장하고 있는 상위기업은 세계 최대 기업인 월마트 정도다.

공언은 하지 않지만 매출액이나 시가총액 면에서 도요타를 월등 앞서고 있는 월마트나 제너럴일렉트릭(GE)을 따라잡겠다는 것이 ‘자동차 정상’으로 올라선 도요타의 다음 목표다.

◆‘도요타 웨이 ’ 추구한다=와타나베 사장은 최근 ‘K 프로젝트’라는 대외비 조직을 사내에 만들었다. K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자신의 이름 ‘가쓰아키’의 영문 머리글자와 ‘교키(광기·狂氣)’의 머리글자다. 기존 라인조직에서는 ‘이단아’로 취급받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직원 10여 명을 특별 차출했다. 이들이 연구하는 테마는 그만큼 특이하다. 현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주제들이다.

“아이들이 운전해도 절대로 부딪치지 않는 기술이 가능하지 않을까.” “게임기 회사 ‘닌텐도’라면 어떤 자동차를 만들까.” “달리면 달릴수록 공기가 깨끗해지는 자동차는 없을까.”
 
와타나베 사장은 이런 토론을 귀 기울이며 듣는다. ‘꿈’과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이 자리에서 나온 아이디어 중 조금이라도 검토할 가치가 있는 것은 즉각 개발과 생산 부문에 지시가 떨어진다. 그의 특별 지시사항이다.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한때 간부회의에서 일부 임원이 “현실성이 없다”는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와타나베 사장은 “이 중에 평론가가 몇 명 있다”며 쐐기를 박았다. 미래를 향한 창의력이야말로 ‘도요타 웨이’이자 ‘도요타의 힘’이라는 자각을 사장 스스로가 누구보다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정상의 위치에서 ‘제2의 도약’을 노리는 도요타의 핵심 전략은 역시 ‘가이젠’이라 불리는 비용절감 능력이다. 와타나베 사장의 지향점은 “국내 공장에서, 세계에서 가장 싸게 만든다”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이는 상식에 어긋난다.

실제 도요타의 종업원은 초임이 높게는 25만 엔가량이다. 반면 중국 광저우(廣州)의 공장은 3만3000엔이다. 인건비가 8배에 달한다. 그러나 도요타는 이를 메우기 위한 생산혁신을 국내에서 하나 둘 이뤄내고 있다.

이 같은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 공장도 나타나고 있다. 인기 차종 ‘크라운’ 을 생산하는 도요타시의 모토마치(本町) 공장. 좌우의 타이어를 연결하는 차축을 만드는 공정이다. 이 공장에선 인건비를 포함한 생산비용이 중국을 밑돌았다. 공정에서 자동화할 부분과 사람의 손으로 하는 게 좋은 공정을 합리적으로 재조정하고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개선점을 찾아 간 덕분이다. 와타나베 사장은 “이 같은 ‘도요타 웨이’는 중국·인도 등 떠오르는 신흥국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경쟁우위를 확보하느냐와도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도요타 2008년형 렉서스 IS250(上). 도요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 'Hi-CT'(下).

르노·닛산 연합은 초저가격대의 승용차 생산을 인도의 오토바이 업체에 위탁했다. 미국의 크라이슬러는 중국 업체로부터 공급받는다. 그러나 도요타는 다른 선택을 했다. “인건비가 올라가면 더 낮은 인건비의 신흥국을 찾고, 또 그곳의 인건비가 올라가면 또 다른 곳을 찾는 식으로는 진정한 경쟁력이 붙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다소 시간은 걸리더라도 신흥국 기업에 비해 경쟁우위를 장기간에 걸쳐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일본에서 기른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도요타 저력’의 원천이다.

◆구체화하는 미래전략=1위 자리 지키기에 연연하지 않는 도요타의 미래 전략은 구체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와타나베 사장은 1일자로 조직을 전면 개편했다. 도요타의 강점이자 미래 전략의 핵심인 하이브리드 관련 분야를 더욱 강화하고 로봇 등 도요타의 차세대 전략사업에 힘을 쏟기 위해서다.

2007년 한 해 동안 와타나베 사장은 2010년대 초까지 하이브리드 차량의 연간 판매 대수를 100만 대로 올려 놓고 하이브리드 대응 모델을 전 차종으로 확산하겠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25일의 연말 기자회견에서는 이보다 몇 걸음 더 나아간 구상을 발표했다.

1차 전략은 신형 충전지의 개발이다. 현재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차에는 니켈수소전지가 사용된다. 이를 리튬이온전지로 대체하는 작업이다. 리튬이온전지는 반복해 충전해도 문제가 없는 데다 중량도 현 수소전지의 절반가량이다. 그러나 출력은 오히려 2배다. 리튬이온전지가 실용화되면 전기모터에 의한 주행거리가 크게 향상돼 연비 향상은 물론 배출가스 삭감으로도 이어진다. 나아가 가정용 전원으로도 충전할 수 있는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도 2010년대 초 시판화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또 와타나베 사장은 장기 과제로 삼았던 새로운 연료의 개발에도 착수했음을 밝혔다. 다만 현재 대체 에너지원으로 각광받는 바이오 에탄올의 경우 옥수수나 사탕수수 등의 식료로부터 만들기 때문에 곡물가격의 급등, 삼림 훼손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세계 최대, 최고 기업’을 지향하는 도요타가 택할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도요타는 식물섬유를 원료로 하는 바이오 연료의 개발에 뛰어들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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