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철밥통 깨기 인사 혁신' 백서 … "모든 정부·지자체 배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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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1 A씨는 20년 넘게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해 왔다. 그는 한글을 전혀 몰랐으며, 배울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 그러다가 4월 이른바 '현장시정추진단'에 오게 됐다. 추진단은 본청 38개 실.국에서 업무 능력이 부족하거나 무능한 공무원 3%씩을 선정, 102명으로 꾸려졌다. '철밥통 깨기'를 위한 퇴출 시스템이다.

이어 서울시는 6개월간 A씨 같은 퇴출 후보들을 대상으로 잡초 뽑기, 고아원 봉사활동 같은 현장 근무와 한글.컴퓨터 같은 직무 교육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A씨는 한글을 배울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10월에 직위해제 돼 공직을 떠났다.

# 2 10여 년 경력의 서울시 공무원 B씨는 현장시정추진단에 오기 전까지는 컴퓨터를 전혀 사용하지 못했다. 근무일지도 자기 손으로 작성하지 못하고 동료들에게 번번이 부탁을 해야 했다. 이렇다 보니 동료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투명인간처럼 있으나마나 한 존재가 됐다. 그는 현장시정추진단에 와서 컴퓨터 초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10월 원래 있던 부서로 복귀했다. B씨는 "현장시정추진단에 오지 않았다면 결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에서 시작해 서울시에서 본격화된 '철밥통 깨기 실험'이 차기 정부에서도 확산될 전망이다. 서울시는 30일 "'신인사 추진 백서'를 대통령비서실.국무총리실.행정자치부.중앙인사위원회 등 66개 중앙 부처와 250개 광역.기초 자치단체에 배포하겠다"고 발표했다. 600여 쪽의 백서에는 현장시정추진단에 속해있던 102명 중 6개월간 재교육을 거친 뒤 개선을 보이지 않은 24명을 퇴출시킨 서울시의 '인사혁신 실험'이 담겨 있다. 이는 이른바 '강소(强小) 조직 만들기'라는 공직사회 인사혁신 모델을 중앙 정부에도 확대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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