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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해도해도 너무 무심한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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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로 일이 바쁘다고, 생활에 피곤하다고
얼굴을 맞대는 것조차 피하진 않았을까.
우리 가족의 모습이 ‘대화가 필요해’와 같진 않았을까.

KBS-2TV ‘개그 콘서트’의 ‘대화가 필요해’. 대화가 거의 없는 우리 시대의 가족상을 과장하며 쌉쌀한 웃음을 안긴다. 고교생 아들 역의 장동민, 엄마 신봉선, 아빠 김대희(왼쪽부터).

‘대화가 필요해’는 KBS-2TV ‘개그 콘서트’의 인기 코너다. 프로그램에는 세 명의 개그맨이 등장한다. 엄마와 아빠,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한 가족이다. 저녁 식탁에서 이 경상도 가족은 아빠의 ‘밥묵자’는 말에 따라 무표정하게, 묵묵히 밥을 먹으며 몇 마디 나누기 시작한다.

아빠:“동민(아들)이는 해 뜨기 전에 기 나가 저녁 먹을 때나 돼서 기 들어오고, 대체 뭐하고 다니노?”
엄마: “지도 모르겠심더.”
이때 아들이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아빠: “니 오늘 하루 종일 밖에 나가 뭐 했노?”
아들: “학교 갔다 왔는데예.”
머쓱해진 아빠가 다시 묻는다.

아빠: “아직 졸업 안 했나?”
아들: “지 올해 입학했심더.”

 서로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는 가족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희화화한 이 코너는 1년 넘게 인기를 끌며 장수하고 있다. 시청자 게시판엔 ‘우리 가족 같다’는 평도 많다.

 3명의 출연진(김대희·신봉선·장동민)이 꼽은 ‘명장면, 명대사’를 통해 올해 우리 가족의 모습을 돌아봤다. 김대희(33)는 “웃기기 위해 상황을 극단적으로 과장했지만 우리 스스로도 반성하며 코너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장동민(28)은 “평소 생활이 반영돼 있다”고 했고, 신봉선(27)은 “코너가 인기를 끄는 걸 보니 ‘대화 없는 가족’이 많긴 많은 모양”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들이 꼽은 인상 깊은 장면,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설이다. 2007년의 마지막 날을 웃음과 반성으로 꾸며보자.
 
 엄마:어머님 아버님, 제주도 여행 보내드립시더. 지가 반찬값 아끼가 돈 모았심더.
 아빠:제주도 사신다.

 시댁·친정 본가·처가의 부모님께 얼마나 연락이 없었으면 이럴 수 있을까. 부모가 어디 사는지 모를 사람은 없겠지만 떨어져 사는 부모님의 근황을 얼마나 잘 알고 있겠나. 보일러 광고를 보면서 부모님의 잠자리가 따뜻한지 아닌지 걱정하면 다행이다. 연례행사 정도로 부모님 얼굴을 본다는 친구들 얘기에 많이 놀랐다. 전화라도 자주 해야 하지만 그것도 쉽진 않다. 정말 대화가 필요한 사이다.

 
 아빠:(곱슬머리 엄마를 보고) 니 또 파마했나.
 엄마:지 원래 꼽실임미더.

 변화에 무관심했던 것, 서로의 일상에 관심 가지는 것조차 귀찮아 하지 않았나. 한 이불 덮고 자는 부부라고, 매일 아침에 보는 가족이라고 서로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다 보면 서로에게 소홀해지기 쉽다. 애정 어린 눈길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서로의 사소한 변화를 눈치 채기 힘들다. 그렇지만 가족의 관심은 힘들 때 더욱 소중한 법이다. ‘누군가 내 옆에서 날 지켜봐 주고 있다’는 것은 아주 작은 변화도 알아봐 주는 가족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느껴진다.

 
 아빠:생활비 좀 아껴써라 안 했나. (한 쪽을 가리키며) 저 쌓아 놓은 박스들… 다 홈쇼핑에서 주문한 거 아이가. 좀 애끼라.
 엄마:낼 우리 이사 갑니더.
 아빠:이 집을 팔았다꼬? 당신은 가장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당신 맘대로 집을 파나?
 엄마:집주인이 나가랍니더.

 한집에서 살지만 각자의 생활은 따로 한다. 집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모두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서 기다리던 아내는 남편의 하루 일이 궁금하다. 남편도 집에는 별일 없었는지 묻는다. 하지만 서로 말하기를 꺼린다. 귀찮아서다. ‘괜히 걱정할까봐’라는 핑계도 있지만 그래도 가족이 아니면 누구에게 이런 얘길 털어놓을까.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도 부모와 대화를 피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으면 대화는 늘 어렵다. 이해 없는 대화가 오해로 이어져 별것 아닌 일로 가족들과 언쟁을 벌인 기억이 다들 있을 것이다.

 
 엄마:느그 아빠는 일요일인데 집에 쫌 있지 어데 가셔서 저녁때도 안 오시노?
 아들:그러게 말입니더.
 (뒤늦게 아빠 등장해)
 아빠:내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방에.

 평범한 가정의 풍경이다. 각자 방에 틀어박혀 휴일을 보낸다. 그나마 밥이라도 같이 먹으면 다행인 정도다. 아이들이 크면 클수록 부모들의 상실감이 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족이라 서로 너무 익숙해서 이런 상태를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정말 이런 상황이 올까 봐 걱정이다.

 
 (전화벨 소리 울리고 아들이 귀찮은 듯 전화를 받는다)
 아들:그런 사람 없다니까 왜 자꾸 그러십니꺼?
 아빠:누굴 찾노?
 아들:김대희라고예.
 아빠:내가 김대희다. 김! 대! 흐! 이!

 학교 시험에 ‘부모의 이름을 한자로 쓰라’는 것이 문제로 나와도 정답을 아는 사람이 몇 없다고 한다. 명문대생도 별로 다르지 않다더라. 부모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친척들 이름은 알고 있을까. 조부모 이름을 모르는 아이들도 많다. 가족이 점점 단출해 지는데 친척들도 자꾸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조카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는 정말 황당하다.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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