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양가 - 미분양’ 악순환 계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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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24면

상가 분양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건축 중인 상가 건물에 분양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중앙포토]

한 대형 건설사가 지난해 1월 준공한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주상복합 상가는 입주 2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전체의 절반 이상이 텅 비어 있다. 대로에 접한 1층 상가 세 곳만 겨우 문을 열고 있을 뿐이다. 역세권의 한복판이고, 지하통로가 지하철역과 바로 연결돼 있는데도 그렇다.

상가 투자 주의보

올 초 서울 서대문구에 들어선 한 대형 의류쇼핑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층부터 빈 자리가 곳곳에 눈에 띄고, 2층 이상은 한적하기만 하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분양률도 낮지만, 분양 뒤 임대도 잘 안 돼 투자자들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가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분양이 안 되고, 세입자를 찾기도 힘들다. 특급지로 분류돼 온 강남권도 예외가 아니다. 분양가 높이기 경쟁을 벌이며 ‘3.3㎡당 1억원대 돌파’를 주도해 온 이 지역에도 최근 할인분양이 일반화되고 있다. ‘수익률 보장’ ‘선임대 확정’ 등 귀에 솔깃한 조건들을 내세우는 곳도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상가뉴스레이다 정미현 선임연구원은 “아파트 시장의 ‘고분양가-수요 부족’ 양상이 상가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며 “당분간 침체를 벗어나기 어려운 만큼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지 내 상가까지 침체 확산

상가 시장의 이상 조짐은 ‘동대문식 쇼핑몰’로 불리는 테마 상가에서부터 시작됐다. 한 건물에 많게는 4000개 이상의 비슷한 매장을 들이는 테마 상가는 1997년을 전후해 서울 동대문에 하나 둘 들어서며 상권을 형성했다. 하지만 단시간에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다 보니 2001년 무렵부터 포화상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분양이 안 돼 개점을 연기하거나 문을 연 뒤 몇 달 만에 폐점하는 곳이 늘어갔다. 동대문이나 명동을 벗어난 곳은 자리조차 잡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쇼핑몰은 지난해 ‘지하철역과 바로 연결, 영화관·병원 입점 확정’을 내걸며 분양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텅 비어있다시피 하다.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식으로 공급된 탓이다. 경매시장엔 한 달에 많게는 100개 이상의 테마 상가 물건이 쏟아지고 있다.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아파트단지 내 상가도 고전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에서 최근 분양된 한 단지 내 상가는 47개 점포 중 단 4개만이 낙찰됐다. 경기도 고양시 행신2택지개발지구 상가도 지난달 공개입찰됐지만 26개 중 9개가 유찰됐다.
 
고가 분양의 대가

이 같은 상황은 지나치게 높아진 분양가가 수익률을 떨어뜨리면서 초래됐다. 3.3㎡당 7000만원에 분양된 서울 대치동 대치아이파크 내 20평형 상가의 경우 보증금 1억원, 월세 400만원에 세를 내주고 있다. 연 수익률이 은행 금리에도 못 미치는 3.7%에 불과하다. 3.3㎡당 1억원 이상으로 분양된 도곡렉슬과 잠실레이크팰리스, 잠실트리지움 상가도 적게는 2.8%, 많아야 5.3%의 연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각종 비용을 감안하면 은행금리보다 적어도 2%포인트는 높아야 한다는 상가 투자의 기본에 턱없이 부족한 수익률이다.

업체도 할 말은 있다. 상업용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요지의 땅값이 워낙 비싸다 보니 분양가가 따라 올라간다는 것이다. 상가뉴스레이다에 따르면 서울 지역의 상가 분양가는 2005년 3016만원에서 올해 3262만원으로 상승했다.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의 분양가는 같은 기간 중 3782만원에서 4294만원으로 뛰었다. 강남역 인근 등 요지에서 최근 분양되는 상가는 3.3㎡당 80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주상복합 아파트를 통한 상가의 과잉 공급도 한몫하고 있다. 주상복합은 이미 상가가 많은 상업지역에 지어지는데도 전체의 30% 이상을 상가로 채워야 한다. 상가 분양이 잘 될 리 없지만, 건설사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상가보다는 아파트를 팔기 위해 짓기 때문이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주상복합 상가는 거주자나 뜨내기 손님을 상대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도 외부 인구를 모두 끌어들일 수 있는 것처럼 광고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피해 사례 급증

상가 투자는 아파트보다 어렵다. 아파트처럼 물량이 많지 않아 시장 가격을 파악하기 힘들고, 지역 입지는 물론 건물 내 층이나 위치에 따른 수익률 차이도 아파트보다 크다. 하물며 시장이 침체된 요즘 같은 때엔 더욱 조심해야 한다.

A씨는 편의점이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200만원에 입점하기로 했다는 분양업체의 말을 믿고 경기도의 한 상가를 4억원에 매입했다. 하지만 잔금을 치르자마자 임대계약이 취소돼 6개월째 상가를 비워두고 있다. ‘선임대’를 내건 상가 분양 중 상당수는 액수가 극히 적은 가계약금만 걸린 상태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 큰 화를 불렀다.

포항에 사는 C씨는 연 8%의 확정수익을 보장한다는 테마 상가를 분양받고 후회가 막심하다. 수익보장각서까지 받았지만 몇 달째 단 한 번도 돈을 받지 못했다. 소문이 나면 상가 가격이 떨어질까봐 분양사를 고소하지도 못하는 상태다. 정미현 연구원은 “상가 분양사는 한 곳을 분양한 뒤 이름을 바꾸는 ‘메뚜기식 영업’을 하는 곳이 많아 안정성이 떨어진다”며 “확정수익을 보장한다거나 은행이 지급을 보증한다는 말은 믿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오피스와의 양극화 진행

상가 시장에 대한 업계의 전망은 엇갈린다. 경기가 나아지면 되살아날 것이라는 낙관론과 장기침체와 양극화가 불가피하다는 비관론이다. 현재로선 비관론이 유력해 보인다. 상가 공급이 포화상태에 이른 데다 유통시설의 대형화, 온라인화가 심해질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수요도 줄기 시작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현재 국내 자영업자 수는 1년 전보다 11만여 명이 감소했다. 전체 근로자 중 자영업자 비율은 외환위기 직후 28.1%에서 지난해 26.5%까지 감소했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외환위기 뒤 어쩔 수 없이 자영업에 나선 사람들의 이른바 ‘묻지마 창업’이 크게 줄었고 쇼핑문화도 대형몰과 온라인 중심의 선진국형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피스 시장의 강세와 상가의 부진도 이런 틀로 설명된다. 유통업체의 대형화와 온라인 쇼핑몰의 증가로 상가 수요는 줄고 사무실 수요는 늘어난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 사무실 공실률은 최근 1.5%를 기록해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박상준 리얼티랩 소장은 “장사가 안 되는 곳은 이미 빈 상가가 넘쳐나고 장사가 될 만한 곳은 고분양가가 발목을 잡고 있는 상태”라며 “입지와 수익률을 감안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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